유럽에 배낭 여행을 다녀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언어의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좁은 지역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민족이 각기 나라를 형성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나라들이 모여 있는 베네룩스 삼국에서는, 자동차로 한 시간 만 운전하면 다른 나라에 가게 되고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를 만난다. 참 신기하다.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고 불편한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구약성서에 의하면 원래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노아의 대홍수 후, 사람들은 하늘까지 치닫는 바벨탑을 쌓아 신에 가깝게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를 신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왔다. 심지어 서로 싸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지금, 인류를 바벨탑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며 그 보급에 힘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에스페란토의 원래 말뜻은 '희망하는 사람'이니, 그들은 언어를 통하여 세계의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인 자멘호프 박사에 의해 창안되었다. 그는 유태인이었고 당시 그의 고향은 러시아의 영토였으며 독일과의 분쟁 중에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태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그리고 독일인 들이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고, 자주 싸우는 것을 보며 자랐다. 자멘호프는 그것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여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라 생각하고, 중립적이고 공통된 언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연구하여 만든 것이 바로 에스페란토이다. 그는 유럽의 여러 언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그들의 장점과 공통점을 이용하여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었다. 에스페란토는 어떻게 생겼을까? 'Mi amas vin.' (미 아마스 빈)은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이다. 유럽의 여느 언어와도 크게 다른 느낌이 안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에스페란토는 쉽다는 것이다. 

현재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약 이백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교수, 목사, 농부, 기술자, 가정주부, 국회의원, 초등 학생 할 것 없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하여 편지를 주고 받으며, 또 때로는 서로 만나 우의를 다진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의 회장은 자랑스럽게도 한국인이다. 각국에 있는 이 단체의 대표자들은 회원들에게 여러 가지의 편의를 제공하는데, 그 중에는 여행을 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특이한 사항이다. 미리 연락을 하면 역이나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도 하고, 여행에 동반해 주기도 하며 숙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마음으로써 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 바로 이것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귀중한 재산이다. 올 여름에는 에스페란토를 배워 유럽으로 배낭 여행이라도 떠나 보는 것이 어떨지. 

크라운 베이커리 1997년 6월호 칼럼 <뜨락>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