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과 에스페란토

-「Korea Antologio de Noveloj」의 발간에 즈음하여-

 

1. 머리말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발표하면서 역점을 두고 수행한 작업 중의 하나가 문학작품의 번역이었다. 이는 인공어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즉 에스페란토가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연어로 된 문학작품의 번역 이상으로 좋은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억(金億)도 1920년대 우리나라에 에스페란토를 처음 보급하면서 문학작품의 번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자신이 시인으로서 문학에 조예가 깊기도 하였으나 역시 그의 의도는 우리 문학을 번역 소개함으로 하여 우리말이 표현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에스페란토로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에스페란토가 보급된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에스페란토로 번역 출판된 문학선집(Antologio)의 형태로 집결된다. 필자는 최근 간행된 「Korea Antologio de Noveloj(한국단편문학선집)」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한국 단편소설의 에스페란토 번역작품에 대하여 정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본 글을 통하여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학문적 가치가 있는 논문이라기보다는 편집 후기정도의 가벼운 글로 여겨지길 기대한다. 참고로 이 문학선집에는 현대 문학 작품만이 포함되어 있고 고대 소설은 제외되어 있으며, 또한 단편소설 이외의 문학 형태는 번역된 작품의 수가 미미하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 글의 내용에서 취급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1975년까지의 한국 에스페란토 문학 활동에 대한 내용은 김삼수(金三守) 저 「한국에스페란토운동사」(1976, 숙명여대출판부 발행)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면 본 글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2. 김억의 에스페란토 보급 및 문학 활동

김억김억은 1920년 6월 서울 YMCA에서의 강의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에스페란토를 처음 보급하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발행된 「폐허(廢墟)」지 창간호 표지에 「La Ruino(폐허)」라는 에스페란토 원작시를 발표하였다. 「폐허」는 김억과 오상순, 염상섭 등이 동인이 되어 발행한 순수문예지이다. 이는 김억이 문학작품을 통하여 에스페란토 보급 활동에 주력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김억은 또한 1921년 최초의 서유럽시(詩) 번역시집인 「오뇌(懊惱)의 무도(舞蹈)(Dancado de Agonio)」를 발행하였는데 여기에는 에스페란토로부터 번역된 원작시 또는 번역시가 소개되어 있다. 이 시집은 현대시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여 한국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김억은 또한 당시에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들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여 초창기 한국 문학을 국내외에 소개하였다. 이 때의 활동은 한국문학선집(Korea Antologio)의 발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된다. 김억에 의하여 번역된 단편소설은 다음과 같다.

「피아노」(현진건 원작, 1922): 「Piano」(김억 번역, 「La Revuo Orienta」, 1930)
「사진」(전영택 원작, 1924): 「Fotografaĵo」(김억 번역, 「La Revuo Orienta」, 1930)
「감자」(김동인 원작, 1925): 「Batato」(김억 번역, 「La Revuo Orienta」, 1930; 「삼천리(三千里)」, 1936)
「명화(名畵) 리디아」(김동인 원작, 1927): 「La Pentraĵo "Lidia"」(김억 번역, 「삼천리」, 1932)

이에 앞서 김억은 일본에스페란토협회의 기관지인 「La Japana Esperantisto」지에 원작시 「Mia Koro」(1916)와 일본 문학자인 오가와 비메이(小川未明)의 단편소설 「거짓말(La Mensogo)」(1918)의 번역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김억은 문학 작품의 번역뿐만이 아니라 에스페란토 문학론, 서평 등 다양한 글을 「동아일보」와 「삼천리」 등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억을 제외한 다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문학 활동이 거의 없어 Korea Antologio는 당시에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Antologio가 발간된 것과 비교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3. Korea Antologio의 발간을 위한 홍형의(洪亨義)와 안우생(安偶生)의 노력

홍형의홍형의는 「삼천리」사 편집국에 근무하다 사퇴하고 1937년에 「Korea Esperantisto」지를 창간하였다. 비록 일제에 의해 곧 폐간되어 창간호 밖에는 발행되지 못하였으나 이 잡지는 표지 포함 24쪽 전문이 에스페란토로 되어 있어 우리 운동사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창간호에는 월북작가인 이태준(李泰俊)의 장편(掌篇) 소설 「천사(天使)의 분노(憤怒)」(1932)가 이정모(李正模)의 번역(「La Indigno de l'Anĝ elo」)에 의해 실려 있다. 또한 1934년 일본의 「Aganto」지에 게재되었던 홍형의의 원작 소설 「La Pioniroj en Vilaĝo(마을의 선구자)」가 다시 수록되어 있다. 후자는 미완성 작품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최초의 에스페란토 원작 소설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홍형의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안우생(Elpin)과 함께 Korea Antologio의 발간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헝가리의 「Literatura Mondo」지와 Korea Antologio의 발간을 결정하고 작품을 선정 번역하던 중 이 작업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안우생은 독립 투사인 안중근의 조카로서 1934년 Usan이란 필명으로 김동인 원작(1931)의 「거지(Almozulo)」를 「Literatura Mondo」에 발표하였고, 1930년대 후기에 유치진(柳致眞)의 장편(長篇) 희곡인「소」(1934)를 번역하여 중국에서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안우생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는 「루신(魯迅)의 단편소설선집(Elektitaj Noveloj de Lusin)」(1939)에 포함된 「광인일기(La Taglibro de l'Frenezulo)」, 「고향(Naskiĝloko)」, 「백광(白光)(Blanka Lumo)」등 세 편의 작품을 번역한 것인데 그의 에스페란토 문체는 국제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인정 받고있다.

4. 이재현(李在賢)의 문학 활동

필명인 Hajpin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재현은 독립운동가로서 1935년 안우생의 지도로 상해에서 에스페란토를 수학하였다. 귀국 후 1949년부터 부산의 에스페란토 운동을 조직하였으며 1969년 「에스페란토-국어 사전」, 1983년 「국어-에스페란토 사전」을 편찬하는 등 이재현이 우리 운동사에 남긴 업적은 지대하다. 또한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수필 등을 번역 발표하여 우리 에스페란토 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의 수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989년 발행된 「Trezoro: La Esperanta Novelarto」 2권에 이재현의 작품인「Neforgesebla Figuro」(1950)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이재현책은 에스페란토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에스페란토협회의 지원 아래 헝가리에서 발행된 것으로 1887년부터 198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발표된 원작 산문(散文) 작품 중 150여 편을 엄선하여 수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이재현의 작품이 당당히 선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재현은 오랜 동안의 활동 기간 중 후반기에 모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번역하여 발표하였는데 이들 작품을 번역 작품의 발표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메아리」(오영수 원작, 1959): 「Eĥo」(이재현 번역, 「La Espero」, 1983)
「붉은 산」(김동인 원작, 1932): 「Kalva Monto」(이재현 번역, 「La Espero」, 1984)
「고요한 평행선」(최범서 원작, 1967): 「Kvieta Paralelo」(이재현 번역, 「La Espero」, 1984)
「제3인간형(人間型)」(안수길 원작, 1954): 「La Tria Tipo de Homo」(이재현 번역, 「La Espero」, 1985)
원제목 미상(최요안 원작, 1955): 「Homo kun Koro」(이재현 번역, 1987)

이재현도 김억, 홍형의와 마찬가지로 Antologio의 발간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의 왕성한 문학 활동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거니와 1987년에 발행된 「Koreaj Eseoj, Noveloj kaj Popolrakontoj」에서도 이재현의 그러한 바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때 까지의 이재현의 모든 원작 및 번역 작품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이재현은 이 책이 후일 발간될 Korea Antologio의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5. 한국 번역 문학에 있어서의 「La Espero el Koreio」지의 역할

「Korea Antologio de Noveloj」의 편찬은 「La Espero el Koreio」(이하 「La Espero」라고 함)지의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 번역 문학사에 있어서 「La Espero」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La Espero」는 1976년 한무협(韓武協)에 의해 창간된 홍보지로서 1994년 폐간될 때까지 모두 123호가 발행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15편의 단편소설이 번역 발표되었다. 이는 「Korea Antologio de Noveloj」에 수록된 번역 소설 25편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분량이다. 특히 1976년 이후 발표된 소설이 모두 20편인 것을 감안하면 그 역할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재현의 번역 작품도 그 중 네 편이 「La Espero」에 수록된 것이다. 또한 원본을 구하기 힘든 [백치 아다다]가 수록된 [La Espero] 1980년 6월호의 표지. 당시 편집인은 정원조, 조성호, 기꾸찌 요시꼬 등. 「Almozulo」,「Batato」등 1930년대에 발표된 작품을 재수록하여 문헌의 보존에도 노력하였다. 「La Espero」에 수록된 나머지 작품들을 번역 작품의 발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갯마을」(오영수 원작, 1956): 「Marborda Vilaĝo」(김칠현 번역, 1978)
「학(鶴)」(황순원 원작, 1953): 「Gruo」(조성호 번역, 1978)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원작, 1936): 「La Sezono de Fagopiro」(김칠현 번역, 1979)
「바위」(김동리 원작, 1936): 「Roko」(황대길 번역, 1979)
「감자」(김동인 원작, 1925): 「Batato」(김억 번역, 1979; 재수록)
「누님의 초상(肖像)」(류재용 원작, 1978): 「La Portreto de la Franjo」(김태경 번역, 1979)
「소나기」(황순원 원작, 1953): 「Ekpluvego」(조성호 번역, 1980)
「발가락이 닮았다」(김동인 원작, 1932): 「Similas Piedfingro」(박기완 번역, 1981)
「거지」(김동인 원작, 1931): 「Almozulo」(Usan 번역, 1982; 재수록)
「백치(白痴) 아다다」(계용묵 원작, 1935): 「Adada la Idiotino」(조성호 번역, 1983; 1회와 2회는 각각 1980년과 1981년에
          「La Espero」에, 3회는 1983년에 「La Lanterno Azia」에 수록)

「행복」(이상 원작, 1936): 「Feliĉo」(박기완 번역, 1983)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 1935): 「Mia Patrino kaj la Pensionulo」(김칠현 번역, 1985)
「타인(他人)의 방(房)」(최인호 원작, 1971): 「La Ĉambro de Iu Alia」(조성호 번역, 1991)

위에서 보듯이 1985년 이후에는 단편 문학의 번역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La Espero」가 폐간된 후에는 한국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o-Asocio)의 기관지인 「La Lanterno Azia」가 미약하나마 그 역할을 대신 담당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번역 발표된 작품은 다음 세 편이다.

「등신불(等身佛)」(김동리 원작, 1961): 「La Ora Budho Dungŝinbul」(최대석 번역, 1995)
「운수 좋은 날」(현진건 원작, 1924): 「Bonŝanca Tago」(김우선 번역, 1998)
「소포(小包)」(김억 원작, 1935): 「Poŝtpakaĵo」(이중기 번역, 1999)

「La Lanterno Azia」는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으며 문학 작품을 수록하기에도 좋은 매체이다. 현재 한용운의 「님의 침묵(La Silento de la Karulo)」이 장정열에 의해 번역되어 연재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능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대한다.

6. 「Korea Antologio de Noveloj」의 발간

오래 전부터 한국에스페란토 협회를 중심으로 이종영, 이낙기, 정원조 등 뜻 있는 분들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도 Antologio 발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수년 전 드디어 구체적으로 그 뜻을 모으게 되었다. 필자도 이를 염두에 두고 1970년대 말부터 틈틈이 단편소설의 번역 작업을 해 오던 터이라 김우선과 함께 그 편집의 역할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송산, 허성, 방명현, 권혜영 등과 함께 편집진을 구성하여 기 발표된 작품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한 지 약 2년만인 1999년 말에 드디어 「Korea Antologio de Noveloj」 (이하 「Korea Antologio」라 함)가 발간되었다.

1999년 간행된 [Korea Antologio de Noveloj]의 표지 「Korea Antologio」에는 339쪽에 걸쳐 모두 2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김억의 번역 소설 중 3편, 안우생 번역의 1편, 이정모 번역의 1편, 이재현 번역의 5편, 기타 「La Espero」에 수록된 11편, 「La Lanterno Azia」 수록의 3편과 필자가 번역하여 발표하지 않았던 황석영 원작(1973)의 「삼포(三浦)가는 길(La Vojo al Sampo)」 등 25편의 소설 번역 작품과 부록으로 「La Pioniroj en Vilaĝo」가 포함되었다. 편집 과정 중 가능한 한 원래의 번역 문체를 살리기 위하여 문법적인 오류를 제외하고는 수정을 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번역자가 아직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여 수록하였다. 박기완, 최대석, 김우선 그리고 필자의 번역 작품이 이에 속한다. 기 발표된 작품 중 「Korea Antologio」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김억의 「명화 리디아(La Pentraĵo "Lidia")」와 대구에 있던 한국에스페란토학회(Korea Esperanto-Instituto)의 기관지 「Korea Revuo」지에 1964-1965년에 걸쳐 실린 서병택(徐丙澤) 번역의 이범선 원작(1959)「오발탄(Miskuglo)」 등 두 편이다. 김억의 작품은 「삼천리」4권 1호와 2호(1932)의 에스페란토란(欄)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 목차에 나와있는데, 후에 편찬된 영인본(도서출판 한빛, 1995)에는 일부가 누락되어 있고 또한 그 원본은 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서병택의 작품은 마지막 부분이 누락되어 역시 포함되지 못하였다. 앞으로 발행될 「Korea Antologio」 2권에는 이들 작품들이 수록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Korea Antologio」에 수록된 원작들을 보면 1920년대 한국 단편소설 개화기의 김동인, 현진건, 전영택 등과 1930년대 서정성이 강한 순수문학의 주요섭, 계용묵, 이효석, 김동리 등, 그리고 광복 후 주로 활동한 황순원, 안수길, 오영수 등 주요 작가의 소설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의 소위 4.19 세대라고 하는 작가의 작품은 최인호, 황석영, 류재용의 소설 한 편씩 밖에 없으며 그나마 1980년대 이후의 작품은 단 한 편도 번역되지 못하여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7. 맺음말

「Korea Antologio」는 김억에서부터 시작하여 홍형의, 안우생, 이재현을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는 한국 에스페란토 문학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는다. 비록 단편소설이라는 형태에 제한된 점이 있지만 그 내용으로 보면 우리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현대 작가의 작품이 부족하여 현대 한국 문학을 소개하기에는 적합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며, 또한 고대 소설, 민화, 시, 희곡 등은 작품을 더 보충하여 후에 별도의 단행본으로 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며 번역 후 문법적 오류를 바로 잡고 문체를 가다듬는 과정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초고가 완성되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읽어보게 하며 특히 모국어가 다른 에스페란티스토에게 교정을 받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어 시작도 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번역 작업은 자신의 에스페란토 실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 된다. 아무쪼록 기존 에스페란티스토들의 활약과 많은 실력 있는 후학들의 양성을 기대하며 「Korea Antologio」 2권이 빠른 시일 내에 발간되기를 고대한다. 또한 우리로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에스페란토 원작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