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에스페란토어의 인기

 

Speaking Up for Esperanto

뉴스위크 한국어판/2003.9.4

 

폴란드의 유대인 루드비크 자멘호프가 1887년 서로 다른 문화간의 공동체를 이룩하려는 희망에서 에스페란토어를 발명한 이래 냉소적인 사람들은 에스페란토어를 언어학적인 미치광이들의 이상향으로 조롱해왔다. 그러나 야심적이고 가능치 않을 듯한 아이디어(단어의 4분의 3이 로맨스어에서 차용됐고 나머지는 슬라브어·그리스어·게르만어에서 따왔다)에도 불구하고 에스페란토어는 나름대로 기세를 떨쳤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에스페란토어에 겁을 먹고 이라크의 유일한 에스페란토어 교사를 추방했다. 또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에스페란토어 때문에 자신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헝가리의 공산정권 아래 있던 그는 1946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어 대회에서 서방으로 망명했다.
에스페란토어 팬들은 계속 늘고 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에스페란토어의 전성기는 이미 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오게 될 것이다.

실제 숫자를 파악하기가 힘들고 발표된 수치도 믿기 어렵지만(국제 에스페란토학회는 에스페란토어 사용자를 약 8백만명으로 추정) 에스페란토어는 아프리카·아시아·남미의 개도국에서 널리 전파되고 있다. 미국 하트퍼드대 영어과 교수이며 국제 에스페란토협회(UEA) 회장을 지낸 험프리 통킨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중국·브라질 같은 나라에서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골수분자들은 에스페란토어를 유럽연합의 공용어로 만들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사실 에스페란토어는 현대에 가장 적합한 언어일지 모른다. 지금은 자유무역·이민·인터넷으로 국경이 무너지고 있고 세계 도처의 운동가·취미가·지식인들이 전례없이 수시로 의사를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페란토어에 대한 열기는 지난 7월 말 제88차 세계 에스페란토어 연차대회가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입증됐다. 일본·이스라엘·네팔·브라질에서 온 UEA 회원 1천8백여명이 에스페란토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회 개최자들은 참석자들이 지난해 대회보다 약 20%는 늘었다고 말해다. 인터넷의 에스페란토어 홈페이지 수는 1998년 3백30개에서 2003년 7백88개로 늘었다. 국제적 언어인 영어와 달리 에스페란토어는 모든 사람들을 동등한 입장에 놓는다. 영어 원어민은 고작 세계 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모든 세계인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기를 기대한다.

런던대의 음성학 교수인 존 웰스는 “나라마다 언어가 다른 아시아에서는 좀더 폭넓은 교류를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할지, 또는 다른 해결책이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페란토어 사용자의 대다수는 아직 유럽인들이다. 자멘호프가 ‘독토로 에스페란토’(‘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가명으로 에스페란토어를 만든 곳이 유럽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영어보다는 5배나 배우기 쉽고, 러시아어보다는 10배나 간단하기 때문에 에스페란토어에 끌렸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에스페란토어를 4시간만에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에스페란토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두려움도 커졌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세상을 더 쉽게 지배하기 위해”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스페란토어가 세계 공동의 언어라는 생각에 겁먹은 스탈린은 에스페란토어 사용자 수천명을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그러면서 에스페란토어 사용자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요즘 유럽의 에스페란토어 사용자들은 냉전시대를 그리워하는 노년층인 경우가 많다(물론 폴란드·헝가리의 학생들은 아직도 에스페란토어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개도국에서 에스페란토어의 인기가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업언어와 정치언어가 영어라는 데 대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하이데라바드대 언어학 교수인 프로발 다스굽타는 “부시와 블레어는 에스페란토어의 최대 우군이 됐다.

세계화는 우리가 탄 배의 돛에 바람을 불어넣어 사람들이 에스페란토어를 언어로서 뿐이 아니라 사회적 아이디어로서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자멘호프가 처음 에스페란토어를 만들 당시에도 그와 비슷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가 급속히 좁아지는 요즘이 에스페란토어의 확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시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