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월요일
돈은 빌려주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 빌린 사람은 기가 죽고, 빌려준 사람도 자칫하면, 그 본전은 물론, 그 친구까지도 잃게 된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심장원에게 주다
이이(1569, 33세에 지음)
산 앞에서 술잔을 받아 산빛을 마시노라니
山前得酒飮山光(산전득주 음산광)
새 지저귀고 꽃도 고와 봄날이 길어라.
끝없는 이별의 시름을 오늘 다 흩어버리니
귀에 들려오는 솔바람소리가 피리보다도 좋아라.
삼월이라 동산 숲에 날씨가 화창하니
작은 뜰에 꽃과 풀들도 봄 빛을 많이 얻었네
그대가 마침 좋은 철에 왔으니
한바탕 웃으며 시를 논하는 것도 즐거우리라.
* 심장원(1531-1607) 문장으로 이름나 1568 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끝내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여 강릉에 가서 여생을 보냈다. 고서화를 많이 수집하였다.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자왈: “귀신지위덕, 기성의호! 담을 성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귀신의 덕은 대단하구나.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시지이불견, 청지이불문, 체물이불가유.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하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본체가 되어 버릴 수 없다.
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사천하인지제명성복, 이승제사.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깨끗이 재계하고 성대한 복장을 입고 제사를 지내게 하는 구나.
洋洋乎! 如在其上, 如在其左右.
양양호! 여재기상, 여재기좌우.
그득하구나. 그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좌우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
시왈: “신지격사, 불가도사! 신가사사!”
시경에 말하기를
“신이 찾아오는 것은
헤아려 알 수 없다.
하물며 꺼려할 수 있겠느냐.”
夫微之顯, 誠之不可揜如此夫. ｣
부미지현, 성지불가엄여차부.”
미세함이 뚜렷이 나타나고, 성실함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右第十六章. 우제십육장.
이상이 16 장이다.
* 이름난 향토 음식을 찾아 다니는 것은 식도락과 강산 구경을 겸해서 별미가 있다. 영광 굴비는 서울에 앉아서도 먹을 수 있지만, 순창 고추장은 말만 들었다. 평양 냉면, 전주 비빔밥은 제 바닥이라 그 맛이 헛된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성 소주, 철원 약주, 김포 특주란 것도 술로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찾아다니며 마신 술로는 김천 과하주, 선산 약주, 문경 호산춘, 안동 소주, 경주 법주가 제 이름 값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다시 남북을 종횡하며 못 가 본 명산, 대천의 나물맛, 고기맛, 술맛을 볼 것이며 숨은 벗, 이름 없는 미인들을 만날 것인가.
<동문서답(東問西答), 조지훈, 범우사, 7판, 1997>
4월 3일 화요일
사람은 마음이 유쾌하면 종일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지만, 걱정이 있으면 불과 10리 길이라도 싫증이 난다.
인생의 행로도 이와 마찬가지로, 항상 밝고 유쾌한 마음을 가지고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눈을 씹으며
이이(1569, 33 세)
그늘진 낭떠러지에 서늘한 기운이 쌓여
봄 지난 눈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동구에 들어설 적엔 아무런 생기 없었건만
차가운 연못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진다.
子曰: ｢舜其大孝也與!
자왈: “순기대효야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순 임금은 위대한 효자이다.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덕위성인, 존위천자, 부유사해지내.
덕은 성인이시고, 존귀하기는 천자이며, 나라에서 가장 부유하였다.
宗廟饗之, 子孫保之.
종묘향지, 자손보지.
종묘에서 제향하고, 자손들이 보존하였다.
[임성삼; 오늘 같이 맑은 날, 아래의 비에 대한 글을 소개하게 되어 즐겁게 생각합니다.]
* 비가 옵니다
한흑구(동해산문)
비가 옵니다.
어두운 새벽부터 시작해서 동이 트고, 날이 새었는데도, 비는 고요히 소리 없이 내립니다.
창을 열고 내다보시오.
키가 큰 포플러, 그 새파란 은행나무, 손바닥같이 넓게 편 무화과 이파리들.
모두 입을 벌리고, 비를 마시고, 비를 내뿜습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수양버들, 맑게 푸르게 머리를 감습니다.
등나무도 새로 나온 새말간 순들을 머리 위에 이고 있습니다.
지금 저 빗속에서도 쭉쭉 뻗어서 기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담 안에 서 있는 향나무도, 머리 끝에 새잎들이 나와서, 두 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밤새의 비에 저렇게 새 잎들이 나왔습니다.
비가 옵니다.
참 좋은 빕니다.
삽을 메고 들로 나가 보시오.
보리 수염들이 파랗게 버티고 서서 은구슬 같은 빗방울들을 하나하나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의 손가락 끝같이, 보리알들이 통통 불어 있지 않습니까?
모판 자리에는 밤 새에도 저렇게 소복소복 모가 자라 나왔습니다.
저 산들을 바라보시오.
둘러서 있는 산 밑에는 안개 속에 하얀 아카시아꽃들이 흰 구름같이 뭉켜 있습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벌들도 오늘은 다 쉬고 있을 겝니다.
내일 해가 반짝 날 때에 두 곱이나 일하기 위해서, 비오는 오늘은 다 쉬고 있을 겝니다.
저 언덕 위에는 능쟁이(명아주)풀들이 파랗게 잎을 벌리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먼저 붉는 능쟁이 이파리들이, 지금은 이 빗속에서 저렇게 파랗습니다.
발자국 하나 없는 들길을 빗속에서 맨발로 혼자 거니는 것도 참 유쾌한 것입니다.
비오는 길 위에는 아무 자국도, 흔적도 없습니다.
새 길입니다.
더러운 개똥도 다 씻겨 나가고, 다 흘러 나갔습니다.
이러한 새 길을 비를 맞으면서 맨발로 걸어나가는 것도 참으로 좋습니다.
마음 속가지 시원합니다.
비가 옵니다.
참 좋은 빕니다.
아랫목에서는 애들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소근거리는 빗소리도 듣지 못하고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들도 다 빗속에서, 잠 속에서 뼈가 굵어지고, 살이 부풀어 오를 겝니다.
저 포도순같이 뻗어나고 자랄 겝니다.
처마 끝에서는 물방울이 뭉치고 커져서 ‘ 똑 ’ 하고 떨어집니다.
동그란 물거품들이 떠내려갈 사이도 없이 터져 버립니다.
누가, 어느 철학자가, 어느 시인이, 인생을 저 물거품 같다고 했습니까?
너무나 허무한 얘깁니다.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하나의 찰나에서 무한한 영겁을 안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루라도 참되게, 착하게,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겠습니까?
비가 옵니다.
참 좋은 빕니다.
춥고, 어둡고, 짖궂게 비오는 날에, 모든 생명이 솟아납니다. 뻗어나고, 자라납니다.
발자국 하나도 없는, 비오는 길 위를 맨발로 한 번 걸어 보시오.
마음 속까지도 시원할 겝니다.
- 1956 년 동아일보 -
[임성삼; 전쟁 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점차적으로 자라나는 우리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4월 4일 수요일
사람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정당한 값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잃어버리면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개천으로 돌아가는 토정 이지함을 송별하다
율곡 이이
형과 아우가 모두 깨끗한 사대부인데
좋은 곳 골라 집 옮기며 한 구역을 차지하였네
살림이라야 조촐해서 한 수레에 차지 않고
시끄런 세속과 뚝 떨어져 주위가 더욱 그윽해라
붉은 가시 그늘 속에 초가 삼간으로 만족한데다
누른 송아지 언덕가에는 밭 두어 이랑이 넉넉하다니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어느 날에야 이뤄지려나
봄날 강가에 멍하니 서서 조각배를 보내네
토정 이지함(1517-1578, 율곡보다 9 세 위)의 형은 성암 이지번이며, 성암의 아들은 나중에 영의정이 된 이산해이다. 토정이 명당을 잡아서 이산해가 높은 벼슬을 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故大德必得其位, 고대덕필득기위,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필득기록, 필득기명, 필득기수.
그러므로 위대한 덕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합당한 봉록을 받고, 반드시 합당한 명예를 얻으며, 반드시 합당한 수명을 얻는다.
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고천지생물, 필인기재이독언.
그러므로 하늘이 생물에게 그 재질에 따라 발전시킨다.
故栽者培之, 傾者覆之,
고재자배지, 경자복지,
그러므로 심어진 것은 자라게 하고, 기울어진 것은 엎는다.
* 봄 비
한흑구(동해산문)
○
봄비가 옵니다.
봄비가 옵니다.
나무에 새싹을 내려고
봄비가 옵니다.
이 시는 우리 나라의 현대시를 제일 먼저 쓰던 시인들 중의 한 분인 주요한씨의 시집 ‘ 아름다운 새벽 ’ 에 실리었던 것이다.
중학 시절에 읽을 때에는 너무나 평범한 시(詩)같이 생각하였으나,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늘에는, 이 시가 말하는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고 어쩐지 심각한 어떤 진리(眞理)를 무섭도록 깨우쳐 주는 것 같다.
일제 시대에 씌어진 시인만큼, 3.1 정신의 새로움을 불러 일으키려는 에스프리(exprit, 精神)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세계는 정치적인 한계를 훨씬 넘어선 의의(意義)와 존재의 가치(價値)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 봄비 ’ 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도 읽은 기억이 있다.
비라도 봄비니
맞아나 둘까,
행여나 내 마음에
새싹이 나도.
역시 3.1 정신이 시들어 갈 때, 우리의 정신에 새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이지만, 시의 에스프리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지금 해가 솟는 바닷가에 서서, 물결도 없이 고요한 바다 위에 소리 없이 떨어지는 봄비를 바라보고 있다.
해는 이미 솟았으나, 안개 같은 보슬비에 싸여서 그 빛을 잃고 있다.
바다는 그냥 잠들어 고래같이 고요히 누웠는데, 그 등 위로 보슬비는 무수한 구슬들을 소리 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바닷가에 서 있는 늙은 버드나무의 가지에도 파아란 새싹들이 뾰족뾰족 부풀어 나오고 있다.
분명히 새싹이다.
파아란 새 생명이다.
봄에는 비가 많이 온다.
비가 많이 온다기보다, 비가 자주 온다.
새싹을, 새 생명을 창조(創造)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비가 내리고, 잠자던 나무에서 새싹이 나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평범한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꽃도, 열매도 맺어 보지 못한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무서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나의 집, 나의 민족, 나라를 생각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봄비는 오늘도 바다 위에, 저 높은 산등성이 위에, 저 넓은 벌판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나무 위에 새싹을 내고, 또한 무수한 푸른 생명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서, 봄비는 오늘도 고요히 내리고 있다.
- 1960 년 동아일보 -
[임성삼; 4.19 혁명을 보고 쓴 글일까요?]
4월 5일 목요일
사람의 잘못은 좀처럼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매화 그림
운수평
눈이 아직 남았는데 어디서 봄을 찾으랴
초당 남쪽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벙그네
봄바람이 복사꽃 살구꽃 피워내기 전에
무쇠 같은 가지에 상큼 향 먼저 번지네
* 눈이 다 녹기도 전에 봄의 벽두에 맨 먼저 피는 꽃이 설중(雪中)매(梅)이다. 추위를 이기고 뭇꽃에 앞서서 피는 매화의 기상을 군자에 비기기도 한다.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시왈: “가락군자, 헌헌령덕!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 ��
의민의인; 수록우천; 보우명지, 자천신지!”
시경에
“착하신 군자여
뚜렷하다 아름다운 덕.
백성들에게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좋게 하니
하늘에서 녹을 받은 것이로다.
편안하게 하고 도와서 그에게 명하였으니(천자가 되는 것을)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이다.”
故大德者必受命. ｣
고대덕자필수명.
그러므로 큰 덕이 있으면 반드시 그만한 지위를 얻게 되고,
반드시 그만한 수명을 얻게 된다.
右第十七章. 우제십칠장.
이상은 제 17 장이다.
진달래
한흑구
아침에 아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진달래를 한 아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 이것 봐요! 진달래가 폈어요! 애들이 산보 갔다 꺾어 왔어요! ”
진달래를
안고 들어오는 아내의 얼굴에도 봄빛이 어리어 있는
것 같았다.
“ 아 참말 폈구나! ”
그 환안한 얼굴들에서, 나는 새로운 봄빛을 보았다.
그
싸늘한 바람과, 그 찬 서리와, 그 늦은 봄눈의 자국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책상 위에 놓인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고려자기
꽃병에다가, 진달래꽃 가지들을 조심성 있게 꽃아
놓았다.
“ 어서 세수하세요. ”
아내는 진달래 같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버리고, 나는 파아란 꽃병 위에 꽂혀 있는 진달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봄의 천사(天使)들인 양, 새롭고, 예쁘고, 화안한 얼굴들이었다.
두 송이, 또는 네 송이씩 짝을 지어서 볼들을 맞대고 피어 있었다.
볼수록
환하고 깨끗하고 어여뻐서, 가만히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분홍색이 되기에는 너무나 진하고, 보라색이 되기에는 너무나 연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옳은 색을 찾아 낼 수가 없어서, 나는 끝없이
바라만 보았다.
누군가 진달래를 수줍어하는 처녀의 얼굴 같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수줍어하는 어색한 빛을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새롭고, 환하고, 봄 처녀 같은 얼굴을
하였지만, 장미와 같이 무르녹는 정열(情熱)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것도같이 보였다.
○
그러나, 어디로 보나, 진달래는 봄에 피는 꽃이 분명하였다.
찬
바람과, 서리와, 늦은 눈 속에서도, 그 환하고
새로움을 보여 주기 위하여 애타던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애수적인
진달래, 수줍은 처녀와 같은 진달래, 그러나 새롭고,
화안하고, 어여쁜 진달래꽃들이 몇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맑고 파아란 고려의 꽃병 속에 꽂혀서 말 없이
웃고 있지 않는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으면서 산(山)마다, 언덕마다, 또한
낭떠러지마다, 봄이면 봄마다 으레 피어나는 무수한
진달래의 숲들을 연상하여 보았다.
○
어릴 때에 보던 모란봉(牡丹峰) 위의 진달래, 나의 고향(故鄕)의 진달래, 한 송이 따서 입 속에 넣던 아기 진달래.
진달래 동산으로 유명한 영변(寧邊) 약산(藥山) 동대(東臺)의 진달래.
바위 틈마다, 바위들을 뒤덮을 듯이 피어 나오던 진달래.
분홍 치마들을 깔아 놓은 듯이 동대(東臺) 위를 덮었던 진달래.
삼십(三十)대의 소월(素月)이가 노래하던 약산(藥山) 동대(東臺)의 진달래.
이십(二十)대의 나도 구경갔던 동대(東臺)의 진달래. 평안북도(平安北道)라, 오월(五月)에야 늦게 피던 진달래였다.
봄마다
진달래는 우리 땅 어느 산(山)에도 어느 언덕에도
피어나왔다. 우리는 해마다 진달래를 보고서 봄을
느꼈고, 봄을 꿈꾸었다.
○
우리 나라 산(山)에 서 있는 특색(特色) 있는 나무는 소나무다.
초동(草童)도 벌부(伐夫)도 소나무는 자르지 않았다.
우리 나라 산(山)에 피어나는 특색(特色) 있는 꽃나무는, 두말 할 나위 없이, 고운 진달래꽃이다.
자르고,
베어 내도, 그냥 퍼져 나가고, 그냔 무성해서, 제일
먼저 산(山)과 언덕 들을 봄의 얼굴로 단장한다.
오늘 아침, 애들이 꺾어 온 진달래는 아무 말이 없이 나의 책상 위에 꽂혀 있다.
봄을 지니고 온 진달래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對)하는 나의 마음 속에는 그 따뜻하고, 아지랑이같이 곱던 꿈이 흩어져 버린 지가 오래다.
어둡고, 차디찬 긴 겨울 밤이 언제나 지나가고, 마음 속에 아늑한 새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창 밖에는 아직도 회오리바람이 끊이지 않고, 볕을 볼 수 없이 뽀얀 안개와 구름에 싸여 있다.
새말갛고 파아란 고려자기 꽃병 속에 꽂혀 있는 저 진달래들도, 기나긴 겨울과, 바람 찬 긴 밤이 밝아 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
봄의 천사들인 양, 새롭고, 예쁘고, 화안한 진달래의 얼굴들을, 나는 또 한 번 쳐다보았다.
1957 년 4 월 14 일 동아일보
4월 6일 금요일
성실치 못한 벗을 가질 바에는 차라리 적을 가지는 편이 낫다. 천박한 벗처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매화를 그리노라
이방응
종이 위에 붓 휘두르니 묵색 산뜻한데
매화 몇 점 그려놓으니 참으로 즐겁다
하늬바람 빌려 멀리멀리 날려서
집집마다 거리마다 봄 활짝 피게 하고파라
*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을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이 소중하다. 이방응은 평생 매화를 사랑하였고, 또 매화를 잘 그렸다. 3, 4구에는 온 세상을 봄볕으로 감싸안으려는 인류애가 짙게 배어있다.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子曰: ｢無憂者其惟文王乎!
자왈: “무우자기유문왕호!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
이왕계위부, 이무왕위자, 부작지, 자술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근심없는 사람은 문왕뿐이었을 것이다.
왕계가 아버지였고 무왕이 아들이어,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했고, 아들이 계승 발전시켰으니.
武王纘大王̖ 王季̖ 文王之緖.
무왕찬대왕 왕계 문왕지서.
무왕은 태왕과 왕계와 문왕의 사업을 계승하였다.
壹戎衣而有天下, 身不失天下之顯名.
일융의이유천하, 신불실천하지현명.
한 번 갑옷을 입고 천하를 얻었다. 자신은 천하의 빛나는 이름을 잃지 않았다.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존위천자, 부유사해지내. 종묘향지, 자손보지.
존귀하기는 천자이고, 사해 안의 부유함을 차지하고, 종묘는 그를 제향하고, 자손들은 그 지위를 보존하였다.
보리
한흑구
1.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 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 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 날, 농부(農夫)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차가움에 응결된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로 낱낱이 부숴 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 속에 깊이 심어 놓았었다.
“ 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 ”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 속에 묻어 놓고, 이에 늦은 가을의 짧은 해도
서산을 넘은 지 오래고, 날개를 자주 저어
까마귀들이 깃을 찾아간 지도 오랜, 어두운 들길을
걸어서, 농부는 희망(希望)의 봄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굳어진 허리도 잊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2
온갖
벌레들도, 부지런한 꿀벌들과 개미들도, 다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의 산새들만이 나지막하게
울고 있던 무덤가에는, 온 여름 동안 키만 자랐던
억새풀 더미가, 갈대꽃 같은 솜꽃만을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물도 흐르지 않고, 다 말라 버린 갯강변 밭둑 위에는 앙상한 가시덤불 밑에 늦게 핀 들국화들이 찬 서리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고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大氣) 속에서도 솔잎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이제,
모든 화초(花草)는 지심(地心) 속에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그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生命)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 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잃고, 따스함을 잃었어도, 너는 꿈쩍도 아니 하고, 그 푸른 얼굴을 잃지 않고 자라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엎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지금,
어둡고 찬 눈 밑에서도, 너, 보리는 장미꽃 향내를
풍겨 오는 그윽한 6 월의 훈풍(薰風)과, 노고지리
우짖는 새파란 하늘과, 산 밑을 훤히 비추어 주는
태양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希望)
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참고 견디어 왔으며, 5 월의
맑은 하늘 아래서 아직도 쌀쌀한 바람에 자라고
있었다.
3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랜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남향(南向) 언덕 위에 누렇던 잔디가 파아란 속잎을
날리고, 들판마다 민들레가 웃음을 웃을 때면, 너,
보리는 논과 밭과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뒤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 누리는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 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너의 푸른 얼굴들이 새 날과 함께 빛날 때에는, 노고지리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너의 머리 위에서 봄의 노래를 자지러지게 불러대고, 또한 너의 깊고 아늑한 품 속에 깃을 들이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틀어 놓는다.
4
어느덧 갯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이 그의 그늘을 시내 속에 깊게 드리우고, 나비들과 꿀벌들이 들과 산 위를 넘나들고, 뜰 안에 장미들이 그 무르익은 향기(香氣)를 솜같이 부드러운 바람에 풍겨 보낼 때면, 너, 보리는 고요히 머리를 숙이기 시작한다.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장미의 그윽한 향기를 온 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고초(苦楚)와 비명(悲鳴)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성자(聖者)인 양 기도를 드린다.
5
이마 위에는 땀방울을 흘리면서, 농부(農夫)는 기쁜 얼굴로 너를 한 아름 덥석 안아서, 낫으로 스르릉스르릉 너를 거둔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6
보리, 저는 항상 순박(淳朴)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55 년 동아일보
4월 9일 월요일
요란스러운 옷은 못 쓴다. 옷은 바로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내 보인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두보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신다
들판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만 밝다
새벽녘 분홍빛 비에 젖은 곳 보니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武王末受命, 周公成文武之德,
무왕말수명, 주공성문무지덕,
追王大王̖ 王季, 上祀先公以天子之禮.
추왕태왕 왕계, 상사선공이천자지례.
무왕이 말년이 천명을 받았으므로 주공이 문왕과 무왕의 덕을 성취시켜서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였고, 위로 선공들을 천자의 예로 제사지내었다.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
사례야, 달호제후대부, 급사서인.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
부위대부, 자위사; 장이대부, 제이사.
이 예절은 제후, 대부 및 선비와 서민에게 통용된다.
부친이 대부이고 아들이 선비이면, 장례는 대부의 예로 지내고 제사는 선비의 예로 지낸다.
父爲士, 子爲大夫; 葬以士, 祭以大夫.
부위사, 자위대부; 장이사, 제이대부.
아버지가 선비이고 아들이 대부이면, 장사는 선비의 예로 지내고 제사는 대부의 예절로 지낸다.
期之喪達乎大夫, 三年之喪達乎天子,
기지상달호대부, 삼년지상달호천자,
父母之喪無貴賤一也. ｣
부모지상무귀천일야.
1년의 복을 입는 것은 대부까지 통용되나 3년상을 입는 것은 천자에까지 통용된다.
부모의 상은 귀천없이 동일하다.
右第十八章. 우제십팔장.
이상이 18 장이다.
산
한흑구
‘ 하느님은 하나의 뱀의 구멍을 위해서 모든 신비(神秘)와 기적(奇蹟)을 지니고 있는 이 높은 산(山)을 창조(創造)하시었다. ’
- 피에르 코르네이유 (Pierre Cornellie) -
1
' 세계의 지붕 ‘ 이라고 알려진 티벳(Tibet)도 높은 산(山)이 많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산(山)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산(山)은 보면 볼수록 정다와지고, 친해진다.
푸른 하늘 복판에 능선(稜線)을 그림[silhouette]하고, 고요히 앉아 있는 먼 산(山)을 바라보면, 어느 인자(仁慈)하신 어머님의 깊은 품과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하여 준다.
동이 터오는 새벽에 산을 바라보면, 갓 떠오르는 햇빛을 이마 위에 받은 부처님이 고요히 앉아서 염불(念佛)을 하고 있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
산(山)은 언제나 성자(聖者)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붉은
노을이 서(西)편 하늘 위에서 우산살같이 퍼져 나갈
때에는, 산(山)도 또한 검붉은 빛을 온몸에 서리며,
장엄(莊嚴)하고 억센 장군(將軍)과도 같은 위엄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산(山)은 크다.
산(山)은 위대(偉大)한 존재(存在)다.
마음이 울적하고 괴로울 때마다, 그 높고, 큰 산(山)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산(山)은 또한 우리의 스승인 양 말 없이 인자(仁慈)하고, 미쁘고, 위대(偉大)한 것이다.
2
산(山)을 보고, 산(山)을 배우면, 산(山)과 같이 신비(神秘)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또 겨울이면 겨울, 계절을 따라가면서 그의 표정은 형용(形容)도 할 수 없을이만큼 변화(變化)해 간다.
그 뿐인가? 산(山)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언제나 그의 표정(表情)을 달리한다.
날이 맑을 때도, 흐릴 때도, 혹은 바람이 불거나, 고요할 때도, 또한 비나 눈이 내릴 때도, 산(山)은 언제나 그 표정(表情)을 잃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외계(外界)에서 오는 분위기(雰圍氣)에 대하여 감수(感受)적이며, 또한 하나의 시인(詩人)인 양 온갖 감정(感情)을 부드럽게, 곱게 또한 거칠고 무겁게 보여 준다.
3
산(山)은 그이 커다랗고, 깊고, 넓은 품 안에 온갖 생물(生物)들을 품어 주고, 또한 그들을 키워 준다.
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섶나무 들같이 크고 우람찬 나무들도 품에 하고 있지만, 진달래, 싸리, 머루, 다래나, 칡덩굴들이나, 꽃피는 온갖 풀과 약초(藥草)들까지도 다 그의 품에 품어 준다.
굴발을 좋아하는 다람쥐와 약초를 즐기는 토끼들도 품어 주지만, 이것들을 해치는 여우, 이리, 곰이나 범 같은 맹수(猛獸)들까지도 산(山)은 다 같이 감싸 준다.
부지런한 벌들에게는 단 꿀도 제공(提供)해 주지만, 독사(毒蛇)에게는 무서운 독까지도 마련해 준다.
이러한 산(山)의 품이기에 관대(寬大)하고, 인자(仁慈)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도 관대(寬大)하고, 인자(仁慈)하기 때문에, 산(山)의 품안에서는 뜰 위에서보다도 더 많은 생물(生物)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발레리(Valery,
Paul)의 말과 같이, 산(山)의 호흡(呼吸)과 생리(生理)는
참으로 신비(神秘)로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번인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 올라서 우리의 산(山)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산(山)이요, 또 산(山)이요, 아무리 넘어 보아도 산(山)이고, 또 산(山)이고, 그야말로 산(山) 천지였다.
여기저기, 산골짜기로는 하얀 냇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으로써 큰 산(山)들의 윤곽을 알아 낼 수가 있었다.
산(山) 위에 또 산(山)이요, 능선 위에 또 능선이요, 하늘을 향해서 산(山)의 물결이 용솟음치듯이 떠오라왔다.
이렇게도
우리 나라에는 산(山)이 많을까 하고 놀랄
지경이었다.
비행기가
더욱 높이 떠올라가면 갈수록, 끝없이 많은 산(山)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떠올라왔다.
가끔 안개인가 구름인가가 산(山)허리들을 감고 있어서, 무한대(無限大)한 선경(仙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구름 위에도, 구름 아래도 오직 산(山)들이었다.
수도 없이 깔려 있는 여러 모양의 모습을 지닌 신비(神秘)스러운 산(山)들이 내려다보였다.
이런 선경(仙境), 이런 신비(神秘)스러운 산(山)들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화백(畵伯) 청전(靑田) 선생의 안개 낀 산수도(山水圖)를 연상해 보았다.
- 1956 년 -
4월 10일 화요일
용기의 대부분은 조심성이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비 개인 뒤
왕가
비 오기 전엔 꽃 속의 꽃술이 예쁘더니
비 온 뒤엔 잎새 사이에 꽃 한 떨기 없네
벌 나비 훨훨 담장 넘어 날아가는데
아마도 봄이 이웃집에 있다고 생각한 게지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子曰: ｢武王̖ 周公, 其達孝矣乎!
자왈: “무왕 주공, 기달효의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왕과 주공은 참으로 지극한 효자였다.
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부효자: 선계인지지, 선술인지사자야.
효자란 선대의 뜻을 잘 이어받고, 선대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효자는 부모 앞에서 예절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이어받고 발전시키는 것이 지극한 효(孝)입니다.]
새 봄 빛
한흑구
새벽부터 재잘거리는 참새들의 지저귐이 한층 더 또렷하게 들려오는 오늘 아침, 나는 뜰 밖에 가로 드리운 매화(梅花) 가지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늦서리가 가신 바로 뒤끝인지, 방울방울 달려 있는 꽃눈들은 눈물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늑한
봄 하늘과 다사로운 태양을 먼저 보고자, 온 겨울을
눈바람 속에서 시달리다 못해 서려 있는 눈물이기도
하다.
이제, 몇 날이 못 되어, 보풀어 올라올 이 꽃눈들이 길고 괴로운 꿈들을 깨치고 활짝 피어나서 새로운 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지랑이 꿈틀거리는 먼 산봉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며, 따사로운 햇빛 속에서 맑게 들려 오는 산새들의 노래 소리를 귀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흰 하늘 높이 서 있는 수양버들의 느렁진 가지가지도 샛노란 빛을 머금고 있다.
마당 뒤에 서 있는 오동나무의 잎눈들도 뽀오얀 솜털에 싸인 채 동그랗게 보풀어 올라오고 있다.
은행나무의 많은 잎눈들보다도 오동나무의 잎눈들이 몇 곱이나 더 커 보인다.
은행나무에 비해서 몇십 갑절이나 더 큰 오동나무의 잎이 잎눈부터가 더 큰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사람도 큰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 성정을 달리하지 않는가?
길가에 나 다니는 어린애들도, 어른들도, 늙은이들도 다 봄을 지닌 듯이 허기를 펴고, 활개를 친다. 이제, 새 봄빛은 앞 언덕을 넘어온 것이 분명하다.
누런 잔디로 둘러싸였던 앞 언덕에는 여기저기
푸른 무늬가 내돋는다.
그 사이의 맑은 푸름 위로 흰 나비들이 쌍쌍이 춤을 추는 것도 눈에 선하다.
먼 산 기슭에는 나물 캐는 처녀(處女)들이 분홍
저고리들을 입고 오르내린다.
얼핏 보면 진달래 꽃들이 뭉쳐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래 저래 새 봄빛은 산과 들과 대기(大氣) 속에
가득히 차 있는 것이 분명하다.
봄은 나의 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새 나의 마음 속에도 숨어든 것이 분명하다.
“ 또 새봄을 맞았구나! ”
이러한 말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새 움들과, 새싹들이 자라 나오는 봄은 확실히
모든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고 약동하는, 희망(希望)의
즐거운 계절인 것이다.
어려서도 봄맞이가 즐거웠지만, 나이가
더할수록, 봄맞이가 더 즐거운 것은 나만이 느껴지는
야릇한 심정(心情)은 아닐 성싶다.
늙은이가 새봄을 맞아 한 해를 더 산다는 것은,
한 평생(平生)을 더 사는 것 같은 귀한 시간이 되는
때문이다.
늙어지면, 한 해 한 해가 한 평생과 같은 느낌이
드는 귀중한 시간이 되는 때문이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하루 한 시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 속아서 산다. ”
가끔 우리는 이런 말을 잘 한다.
이 말은 어느 철학자의 말보다도 값 있는 말이다.
다른 동물들은 다 삶을 즐기면서 살고 있는데, 욕망이 많은 우리 인간들은 늘 속아서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생을 속아서 살아도 좋고, 헐벗고 살아도 좋다.
다만 남을 속이지 말고, 참되게 살 수 있는 것이 행복(幸福)인 것이다.
세상(世上)에게 속고, 사람에게 속고, 온통 속아서만 살아야 한다면, 세상은 비극(悲劇)의 막(幕)으로 덮이고 말 것이다.
나의 눈앞에 또렷하게 전개(展開)되는 새 봄빛들과 같이, 나도 그렇게 싱싱하게 싹트고, 새롭게 살아가고만 싶다.
- 1957 년 동아일보 -
한흑구(1909~1979)
수필가, 번역문학가. 평양 출생. 1929 년 도미하여 시카고의 노스파크 대학에서 영문학을, 템플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 종합지 대평양과 문예지 백광의 창간을 주재. 1945 년 월남하여 수필 창작에 몰두. 1958 년 포항수산대학 교수로 임명. 1974 년 포항수산대학 정년퇴임. 1975 년 효성여자대학 강사.
4월 11일 수요일
우선 계획은 잘 짜여진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이것이 확인되면 단호하게 실행한다.
약간의 싫증 때문에 실행의 결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이른 봄
양거원
시인이 반기는 건 이른 봄 맑은 경치
버드나무 가지 아직은 파릇노릇
상림원(上林苑) 뜰 안 꽃비단처럼 화사할 무렵 되면
거리는 온통 꽃놀이꾼일레라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春秋脩其祖廟, 陳其宗器, 設其裳衣, 薦其時食.
춘추수기조묘, 진기종기, 설기상의, 천기시식.
봄, 가을로 조묘를 돌보고 종기를 진열하고, 의복을 펴놓고, 제 철의 음식을 차려놓았다.
宗廟之禮, 所以序昭穆也;
종묘지례, 소이서소목야;
종묘의 예는 소목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즉)
序爵, 所以辨貴賤也;
서작, 소이변귀천야;
관위의 순서를 세우는 일은 귀천을 판별하는 일이다.
序事, 所以辨賢也;
서사, 소이변현야;
(종묘에서) 일의 순서를 세우는 것은 현명한 것을 판별하는 일이다.
[임성삼; 지금도 중요한 곳에서 일의 순서를 판별하는 능력은 현명한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旅酬下爲上, 所以逮賤也;
여수하위상, 소이체천야;
여수(?)의 예를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행하는 일은 천한 사람까지 포섭하는 일이다.
燕毛, 所以序齒也.
연모, 소이서치야.
연모(?)의 예는 연령의 순서를 정하는 일이다.
화단(花壇, 단 단)의 봄
한흑구
1. 달래
어느덧 대동강(大洞江)이 다 풀리어 나갔다고 생각하였더니, 추녀 끝에 주렁주렁 매달였던 꽃움들이 다 스러졌다.
이제는 밤이 깊어져서도, 지붕 위에서 눈이 녹아 내리는 소리가 마당 귀에서 찰둥찰둥 들려 온다.
무엇보다도 봄을 가장 육감적(肉感的)으로 알려 준 것은 달래이다.
오늘 아침 조반상 위에는, 색이 아직 파릇파릇한 달래가, 온 겨울 주방(廚房, 부엌 주)에서 묵은 고추장에 발리고, 고소한 깻가루에 섞이어서 한 접시 들어왔다.
마늘같이 냄새는 많지 않아도, 매운 듯한, 달래만이 갖고 있는 맛을 씹으면서, 채 녹지 않은 벌판에 나가서 달래를 캐는 처녀애들을 연상(聯想)해 보았다.
2. 화단(花壇)
도시(都市)에 있는 집들은, 누구의 집이나 다 앞뜰이 좁지마는, 우리 집도 그리 넓지 못하다.
그러나, 대문 안 옆에 단 두 평이라도 남은 땅이 있어서, 나는 그 곳에 꽃을 심고, 벽돌들을 주워서 담을 둘러 쌓았다.
이 좁은 모퉁이를 나는 화단(花壇)이라고 부르고, 여러 가지 꽃씨들을, 봄마다 내 손으로 흙을 들추어 심곤 하였다.
나는,
봄마다, 매일같이 이 화단의 흙이 어서 녹아서
보드라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3. 꽃씨
꽃씨를 손바닥 위에 놓고서 들여다볼 때에는, 어느 때나 생(生)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신비(神秘)를 아니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알[卵]이 갖고 있는 신비(神秘)와 꼭 같은 것이다.
꽃씨들을 땅 속에 묻으면, 얼마의 시일은 어두운 땅 속에서 지내야 한다.
땅 속의 포근한 품안에서 잠들어 있다가, 하나의 푸른 생명(生命)을 창조(創造)하여서 파릇한 움과 뿌리로 변화하여, 그 무겁고 굳은 땅을 뚫고 뻗어 나온다.
얼마나 신비(神秘)로운가!
나는 늘 그 움들이 솟아나오는 것을 들여다보고 앉았을 때가 많다.
그러나, 꽃씨도 자기의 키의 열 배(倍, 곱 배) 이상의 깊은 땅 속에 묻히면, 그만 자라나오지 못하고, 썩어서 죽고 만다는 사실도 알아 낼 수 있었다.
4. 아주까리
나의 화단(花壇)이라는 좁은 구석에, 나는 봄마다 나팔꽃, 다알리아, 백일홍, 봉숭아, 해바라기, 채송화, 염주나무 들을 심어 왔다.
그러나, 이번 봄에는 아주까리 씨를 서너 알 얻어 왔는데, 이것을 새로 심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촌에서 기름등을 켜지 않고, 석유불을 켜기 때문에, 아주까리를 별로 심지 않지만, 나는 아주까리를 퍽 좋아한다.
육칠
척(尺)의 큰 키에 넓은 잎들이 피어나와, 손길같이
벌리고 서 있는 것을 볼 때에는 남국(南國)의 해변(海邊)가에
서 있는 야자수(椰子樹)를 연상시켜 주는 그것을
나는 좋아한다.
더구나 도시(都市)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까리가 퍽 색다른 맛을 주는 것이니, 집마다 마당 한 구석에 두어 나무씩 심어 놓으면 좋지 않을까?
씨의
신비(神秘)를 사랑하던 앙드레 지드(Andre Gide)를
생각할 때, 나는 더욱 화단(花壇)의 봄을 기다린다.
- 1947 년 문예독본 -
4월 12일 목요일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진실치 못하면서 남이 자기에게 어찌 진실하기를 바라겠는가. 만약 스스로에게 진실하다면, 밤이 낮을 따르듯 대개의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이다. 진실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진실을 구하자. 진실로 무장하자.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산에 봄비가 내리는데
대희
빈 산에 흠뻑 봄비가 내리고
복숭아꽃 살구꽃 울긋불긋 피었네
산중이라 꽃 피어도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시냇물에 그림자 드리웠네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병한 엮음, 민음사, 2000>
踐其位, 行其禮, 奏其樂, 敬其所尊,
천기위, 행기례, 주기약, 경기소존,
愛其所親,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孝之至也.
애기소친, 사사여사생, 사망여사존, 효지지야.
선인의 위에 오르고, 선인의 예를 행하고, 선인의 음악을 연주하고, 선인이 존중하던 사람을 존중하고,
선인이 가까이 하던 사람을 아끼고, 죽었을 때 섬기기를 살았을 때 섬기듯이 하고, 망인을 섬기기를 현재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하는 것이 효의 극치이다.
[임성삼; 효가 지고(至高)의 가치일 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모두 행하면서 진보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보통 사람은 이렇게 하여 과거에 이루어 놓은 좋은 점을 전승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이것을 행하면서 진보를 이루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 과거의 점을 전승하면서 최상의 가치로 생각했던 그 점을 깨뜨리고 자기의 행동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이 어렵다는 것은 동서의 역사에 나온 개혁자의 삶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
한흑구
새.
새여! 나는(날으는) 새여!
우리들과 제일 가까이 살고 있는 날짐승이여!
보통 동물(動物)들은 네 발로 걷고 있지만, 새, 너희들은 두 발로 걷고, 두 날개로는 창공(蒼空)을 날고 있지 않은가?
소나, 개나, 고양이는 네 발로 걷고 뛰고 하지만, 사람은 두 발로 걷고 뛰고 하면서, 두 팔과 손으로 온갖 재롱을 다 부려 보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새, 너는 우리의 두 개의 팔 대신에 날개를 마련해서 높은 창공을 마음대로 날 수 있어서,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바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날개 아는 손으로, 손재주로, 비행기(飛行機)를 만들어서 너와 마찬가지로 창공을 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람의 손에는 스물 여섯 개의 잔 뼈들이 있어서, 세상에 있는 어떤 기계보다도 가장 예민(銳敏)하고, 능률(能率)적인 기계라고 밝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손재주로 만든 비행기로서는 새, 너의 나는 모습을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사정인 것이다.
새,
너는 너의 나는 재주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너를
부러워해야 할 지경인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들을 하였다.
“ 내가 죽으면, 흰 학(鶴)이 되어서 푸른 하늘 위로, 신선(神仙)과 같이, 훨훨 날면서 살고 싶다. ”
지상(地上)에
사는 동물들 중에는 기는 놈, 걷는 놈, 뛰는 놈, 또는
나는 놈 들이 있는데, 너야말로 산 위로, 또는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놈이 아닌가?
자기의 키만큼도 날 수 없는 사람이 너를 부러워하고, 너를 아끼고, 너를 사랑하는 정(情)은 얼마나 마땅하고 또한 아름다운 정이 아니겠는가?
내가
어려서 말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에, 날아
다니는 새로는 참새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처마 구멍 속에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고, 아침 저녁으로 빨랫줄 위에서 재잘거리던 참새들을.
또,
봄이 오면 날아 오고, 가을이 오면 강남으로
돌아가는 제비들.
간혹, 지붕 위에 까치가 앉기도 하고, 겨울이면 검은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서 흰 눈이 덮인 벌판 위를 날아 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더구나, 하늘 높이 독수리나 솔개가 나는 것을 볼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신비(神秘)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한, 열을 지어, 군대 모양으로, ‘ ㅅ ' 자 편대(編隊)를 지어서 보름달을 ’ 실루엣(silhouette) ' 하고 지나가는 기러기떼들을 바라볼 때에는 일종의 황홀(恍惚)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두 날개로 날아 다니는 것은 모두 새라는 것을 어렸을 때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그
뒤, 내가 자라남에 따라서, 별로 날 수는 없어도
날개를 갖고 있는 것은 다 새에 속(屬)하는 것이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뜰 안에 기르고 있는 닭이라든지, 오리, 거위, 칠면조 들은 그렇게 잘 날 수는 없으나, 두 날개를 갖고 있는 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물원(動物園)에서,
우리 나라에 없는 새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공작(孔雀), 앵무새, 카나리아, 타조(駝鳥)에 이르기까지 지구(地球)상에는 수천종의 새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새들이요, 아름다운 식물이 있다면, 그것을 꽃을 피우는 수천종의 꽃나무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꽃은
한 곳에 피어 향내를 피우며 웃고 있는 모양이
곱지마는, 새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날아 다니는
것이 더 율동적(律動的)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새들이 내가 늙고 있는 지금에는 왜 줄어
가고 없어져 가고 있나?
학(鶴), 두루니, 백로(白鷺)도 보기 드물고, 까마귀, 까치까지도 보기가 드물다.
해조(害鳥)라고 불리던 참새들조차 잘 볼 수가 없지 않은가?
나락이 익는 가을마다 논과 밭에 실오라기, 헝겊 들을 날리고, 밀집 모자를 씌운 허재비(허수아비)들이 세워져 있고, 새끼줄에 매달린 빈 깡통들이 소리를 내어서 참새들을 쫓아 내던 그런 풍경(風景)조차 볼 수 없는 오늘이다.
‘ 참새 불고기 ’ 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인가?
우리가 기르는 닭과 오리도 얼마든지 있지 않나?
총을 둘러메고 들로, 산으로 헤매는 사람들같이 미운 사람은 없다.
얼마 안 가서, 그 노래 좋은 뻐꾹새, 장끼, 까투리가 다 멸종(滅種)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우리
나라의 인구(人口)는 날로 늘어나고, 새들은 날로
줄어든다.
사람의 인권(人權)도 귀중하지만, 새의 생존권도, 모든 다른 동물들의 생존권도 다 평등해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 외가(外家)를 찾아 시골에 가면, 흰 눈이 덮인
벌판 위에 까치와 까마귀 떼들이 날아다녔다.
아침에 까치가 대추나무의 앙상한 가지 위에 와서 울면 ‘ 아침 까치는 떡 까치 ’ 라고 외할머니가 나에게 일러 주셨다.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신다는 것이고, 그 손님이 떡을 해 가지고 오신다는 것이다.
내가
늙어가는 오늘에는 시골에 나가 보아도 까치 한
마리를 볼 수가 없다.
흰 눈이 덮인 벌판 위로 꼬리가 희고 긴 까치 한 마리라도 날아 다니는 것을 보고 싶은 아쉬운 마음뿐이다.
- 1970 년 대구매일신문 -
4월 13일 금요일
일단 일에 참여하면, 목표로 한 모든 것을 성취할 때까지 손떼지 말라.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붉은 복사꽃 아래서
퇴계 이황
꽃 심었던 늙은 나그네 십 년 만에 돌아오니
나무도 늙었지만 나를 맞아 활짝 꽃피웠네.
꽃 보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 없기에
기쁘고 슬픈 일들을 모두 봄 술잔에 부치려네.
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
교사지례, 소이사상제야,
宗廟之禮, 所以祀乎其先也.
종묘지례, 소이사호기선야.
하늘과 땅을 제사하는 예절은 상제를 섬기는 일이다. 종묘의 예절은 자기 조상을 제사하는 길이다.
明乎郊社之禮̖ 禘嘗之義, 治國其如示諸掌乎. ｣
명호교사지례 체상지의, 치국기여시저장호.“
하늘과 땅을 제사하는 예와 체상(네 계절에 황제가 제사하는 것)의 예를 뜻을 명백히 알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진다.
[임성삼; 이와 같은 대목이 논어에도 나옵니다.
나폴레옹의 ‘그럴듯한 과정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논리적인 설득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 보다 훨씬 효율적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일까요?]
右第十九章. 우제십구장.
이상이 19 장이다.
제비
한흑구
○
제비는 철새다.
봄에는 오고, 가을에는 간다.
그가 오고 가는 시간은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가 오고 가는 공간(空間)은 집을 멀리 떠나온 사람들에게 슬픈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가져다 준다.
제비는 꾀꼬리나, 카나리아, 앵무새와 같이 울긋불긋하게 번거로운 색깔을 갖는 대신에, 흰 가슴에 검은색 신사복(紳士服)을 점잖게 입고 있다. (꽁지가 더 신사복과 같기 때문에 연미복(燕尾服)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른다.)
검은색 벨벳(velvet)같이 빛깔이 곱고 윤택(潤澤)한 몸매는, 다른 어떤 새에 비(比)햇도 날쌔게 생기고, 깨끗하게 생긴 것이다.
툭 나온 가슴 속으로부터 굴러나오는 그의 노래, 구슬을 굴리는 듯한 그의 노래 소리를 들으면 그의 마음 속도 점잖고, 맑고, 아름다울 것 같다.
참새나,
메추리나, 꿩 같은 것은 그 나는 모양이 제비에
비해서는 소걸음이요, 오리걸음인 것이다.
독수리나, 매라고 할지라도 제비의 나는 모양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조인(鳥人)이라고 불리는 제트기(機) 조종사도 제비의 나는 모양을 따르려면 아직도 감감한 것이다.
아마 불가능(不可能)할지도 모른다.
○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로는 물론, 개, 고양이, 돼지, 소, 닭 들을 들겠지만, 그러나 야생조류(野生鳥類)로서 사람과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제비뿐이라고 할 것이다.
참새도 아침 저녁으로 지붕 위에서나 나뭇가지 끝에서 종알거리지만, 제비와 같이 집 처마에다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아니다.
제비는 곱고, 착하고, 신사(紳士, 큰 띠 신)와 같이 믿음성이 있어서 사람을 믿고, 친하여 사는지도 모른다.
참새는 그 눈부터가 죄(罪)를 저지른 도둑같이 동그랗고, 달랑달랑 잠시도 쉬지 않고 고개를 까딱거린다.
사람들이 옆에만 가도 질겁을 하고 달아난다. 사실, 가을마다 얼마나 많은 나락(벼)을 먹는가?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제비는 잡지 않아도 다른 새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 먹는지 모른다.
제비는
봄에 집을 짓고, 알을 낳고 까서, 새끼들을 기른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어디서 잡아 오는지 금방 어미 제비는 벌레를 물고 둥지로 돌아오곤 한다.
눈이 채 뜨이지 않은 제비새끼들이 눈을 감은 채로, 그 커다란 입을 찢어질 듯이 벌리고,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찌이찌이>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벌리고 우두두 떨어 댄다.
여기저기 하얀 털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온몸을 곱게 감싸고, 날개들이 힘을 얻어서 푸른 하늘로 날아가려면 아직도 여러 밤을 더 자야 한다.
이렇게 길러난 제비 새끼들이 어느덧 처마 끝에서 빨랫줄, 빨랫줄에서 담장을 넘어 새파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예술(藝術)이 얼마나 힘차고, 아름답고, 줄기찬 것인가 하고 새삼 감명(感銘)을 아니 받을 수 없다.
○
나락들이 누렇게 익어서 고개들을 숙이는 가을이 오면, 제비들은 들로, 벌로, 하늘로, 높이 또는 낮게, 또는 날쌔게 날아다닌다.
벌레를
잡던 때보다도 더 빠르게, 날쌔게 하늘 높이 나는
것은, 멀리 멀리 나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몇만 리 밖인 강남(江南) 땅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가 전선줄 위에 나란히 앉아서
쉬기도 하고, 회의도 하는 것이다.
소대, 중대, 대대를 편성하여서 조직적으로 행군을 할 것을 의논도 하고, 어떻게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지, 그 나는 법 등을 강의하는 것인가?
이렇게 준비한 후에 그들은 먼 여행을 떠나서,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고, 오는 봄에 다시 올 것을 기약(期約)한다.
집을
멀리 떠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리 내린 아침,
잠자리 마냥, 또다시 깊은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히고
만다.
사람도 철새처럼 집을 찾아다니며 살아야 하나?
사람은
자기가 난 곳을 <집>이라고 하고, <고향>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죽는 곳은 집이 아니고 무엇일까?
집과 고향은 자가가 난, 단 하나의 곳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도 그리워하는 것일까?
코끼리도, 범도 다 제 굴로 돌아가서 죽는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
제비는 봄에는 오고,
가을에는 간다.
우리 땅에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가르쳐 주는 착하고 고운 새다.
또한, 우리 땅에다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흥부나 욕심꾸러기인 놀부의 이야기를 심어 준 것도 제비인 것이다.
제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가장 착하고
가장 고운 새라는 것을 나는 늘 자랑하고 싶다.
○
제비는 오고가고, 가고오는 새인만큼, 흘러가는 우리의 마음 속에 더욱더 깊은 정서(情緖)를 새겨 준다.
오늘도 비행기 드높게 나는 누런 벌판 위를 수없이 많은 제비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돌아갈 날이 가까운 것이다.
○
추운 계절이 다가오는 이 땅에서 떠나지 말라고 붙잡아 놓을 수도 없는 제비다.
그러나, 내년 봄이 오면, 강남(江南)의 고운 봄을 안고 다시 돌아올 제비들이 아닌가?
○
제비들은 봄마다,
이른 봄마다 돌아온다.
제비들은 봄마다 피어나는 고운 진달래와 함께, 이 땅에 봄의 소식을 알려 주는 아름다운 봄의 사자(使者)인 것이다.
- 1969 년 현대문학 -
4월 16일 월요일
정직만큼 부유한 유산도 없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벗에게
임억령
옛 절 앞에서 또 봄을 보내는데
남은 꽃이 비를 맞아 내 옷에 지데.
돌아올 때 소매 가득 향기가 남아
무수한
벌들이 멀리까지 따라오데.
임억령; 1496(연산군 2)-1568(선조 1). 호는 석천(石川). 임백령의 형. 동부승지, 강원도 관찰사.
哀公問政. 애공문정.
子曰: 자왈:
노나라의 군주 애공이 정치에 대해 물으니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임성삼의 주(註); 아래 부분이 공자님이 정치에 대해 노나라 군주(君主)에 대답한 말입니다. 그래서 존대말로 번역하였습니다.]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문무지정, 포재방책. 기인존, 즉기정거;
其人亡, 則其政息. 기인무, 즉기정식.
문왕과 무왕의 정치는 서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임자가 있으면 그 정치는 살아납니다. 적임자가 없어지면 그 정치는 되지 않습니다.
<도연초, 전길겸호(요시다 켕코오) 지음, 송숙경 역, 을유문고 182, 1975 년 초판, 1996 년 7 쇄>
봄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달밤에는 잠자리에 들어 있으면서도 꽃이나 달을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뜻있는 사람은 별로 반해서 즐거운 모습을 보이지 않거니와 흥겹게 여기는 품도 매우 산뜻하고 멋이 있다. 시골뜨기들은 무엇이나 끈덕지게 흥겨워한다. 꽃을 볼 때만 하더라도, 그 나무 밑에 바싹 다가서서 보기도 하고, 꽃을 뚫어지게 바라다보기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렝가[연가(連歌)]를 짓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커다란 꽃가지를 분별없이 꺾어들고 즐거워한다. 샘물에는 손과 발을 마구 쑤셔넣어 씻기도 하고, 눈이 쌓인 뜰에는 일부러 나아가서 발자국을 내놓기도 한다. 무슨 일에나 멀찍이 두고 보는 일이 없다.
그런 시골뜨기들이 카모[賀茂]의 축제를 구경하는 꼴이란 참으로 진경(珍景)이었다. “오는 게 더디구먼. 그 동안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도 무미(無味)한 일이다”라며,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바둑이나 쌍륙(雙六)을 치며, 관람석에는 지키는 사람을 두고 망을 보게 하다가 “지나가십니다”고 연락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달려나와 법석을 떨며, 자리를 찾아 밀고 닥치고 지나가는 축제행렬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려 든다.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저건 어떻고 하며 떠들어대다가 그 행렬이 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 다음 행렬이 올 때까지라도 마시고 먹고 하는 것이다. 그저 겉모양만 구경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오토[경도(京都)]의 멋이 있는 사람들은 조는 듯한 모습으로 별로 눈여겨보는 것 같지도 않다. 젊은 하인배들은 시중을 드느라고 앉았다 섰다 하지만, 뒤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자세를 흐트러뜨려서 앞을 다투어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접시꽃 잎(축제의 상징)을 장식해서 우미(優美)한데, 밤이 새고 날이 밝을 무렵, 슬쩍 관람석으로 다가오는 유람용 수레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그분인가 두루 상상해 보고 있으면, 소를 끄는 소몰이꾼이나 하인의 얼굴을 알아 보는 이도 있다. 우아하고도 아름답게 꾸민 수레가 오가는 모습도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게 느껴진다. 통 싫증이 나거나 지루하지 않다. ......
4월 17일 화요일
참으로 자녀를 아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남명 조식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두류산; 지리산
조식: 1501(연산군 7)-1572(선조 5). 영의정 추증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盧也.
인도민정, 지도민수. 부정야자, 포로야.
사람의 도는 정치에 신속히 작용하고 땅의 도는 나무에 속히 작용합니다.
정치라는 것은 창포와 갈대입니다.
故爲政在人, 取人以身, 脩身以道, 脩道以仁.
고위정재인, 취인이신, 수신이도, 수도이인.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데는 자신이 할 것이고, 자신의 몸을 닦는 데는 도로써 합니다. 도를 닦는 데는 어짊으로써 합니다.
<도연초, 전길겸호(요시다 켕코오) 지음, 송숙경 역, 을유문고 182, 1975 년 초판, 1996 년 7 쇄>
제137단; 꽃은 활짝 피어 만발했을 때, 달은 구름 없는 맑은 하늘에서 교교히 빛날 때에만 완상(玩賞)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임성삼; 근심이 없고 기쁜 일만 있을 때에만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먹구름이 낀 밤하늘에 명월(明月)을 그리워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가 봄이 다 가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것도 생각해 보면 깊은 정취가 감도는 일이다.
이제 금방 벌어지려고 봉오리가 부풀어 있는 꽃가지, 낙화(洛花)로 어지러워진 마당이나 뜰 따위가 오히려 볼 만한 맛이 있다. 와카[和歌]의 머리말에도 “꽃구경을 갔더니 벌써 꽃이 지고 난 뒤여서”라든가 “볼일이 생겨서 가지도 못하고”라고라도 쓰면, “꽃을 보고 나서”라고 쓴 것에 비해 그만 못한 것일까? 꽃이 지고 달이 기우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인정은 수긍할 만한 일이지만, 특히 생각이 트이지 않고 멋을 모르는 사람은, “이 가지도 저 가지도 다 꽃은 지고 말았다. 이젠 볼 만한 것이라곤 없구나”라고 한다던가.
무슨 일이든 시초와 종말이 특히 재미있는 법이다. 남녀의 정애(情愛)에서도 다만 서로 만나는 밀회(密會)가 성공한다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만나러 갔다가 못 만나고 돌아오는 아쉬움이나, 덧없이 끝난 사랑의 약속을 탄식하여 기나긴 밤을 쓸쓸히 혼자 지새우며 먼 곳의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쑥대가 무성한 오두막 집에서 그리운 사람과 만나던 옛 일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거나 하는 그런 것이 진정으로 연정(戀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임성삼; 이 스님은 정애(情愛)에 도가 트신 분입니다.]
보름 달이 맑고 밝게 빛날 동안 천리까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것보다, 새벽녘 가까이 되어서야 기다리던 달이 경우 올라오는 모습이 더욱 정취(情趣)있고, 검푸른 나뭇가지 사이에 떠오른 달그림자,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달빛, 약간의 먹구름 사이로 숨는 달의 정경 따위가 한층 더 정서가 깊은 것이다. 참나무나 상수리나무의 젖은 듯이 윤기가 흐르는 잎 위에 달빛이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은 사무치도록 마음을 움직여 기분이 통하는 친구가 곁에 있었으면 하고,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새삼 생각케 한다. 아마도 달이나 꽃을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그 정취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리라.
4월 18일 수요일
타인의 비판은 되도록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만, 타인의 판단은 따로 두는 것이 현명하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후서강(後西江)
한호(석봉)
천 이랑 맑은 물결 거울 같은데
굽은 난간 의지하고 창랑가(滄浪歌)를 불러라.
강가의 갈대숲에 서풍이 급히 부니
달리는 돛단배들 석양에 어지러워.
한호: 1543(중종 38)-1605(선조 38). 진사시에 합격, 천거로 군수, 존숭도감 서사관.
仁者人也, 親親爲大; 義者宜也, 尊賢爲大;
인자인야, 친친위대; 의자의야, 존현위대;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친친지살, 존현지등, 예소생야.
인(仁)이란 사람다움이니, 친척을 친애(親愛)하는 것이 그 중에서 큰 일이고,
의(義)란 마땅함이니, 어진 이를 존중하는 것이 그 중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친척을 친애함에 그 정도가 차례로 줄어지는 것과, 어진 이를 존중함에 그 정도에 차등이 있는 것은 다 예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의(義)란 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정치에 참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연초, 전길겸호(요시다 켕코오) 지음, 송숙경 역, 을유문고 182, 1975 년 초판, 1996 년 7 쇄>
제141단; 비전원(悲田院)의 교오렝[堯蓮] 스님은 재속시 성이 미우라[三浦]라고 하는 굉장한 무가(武家) 집안이었다. 어느 날 향리에서 온 사람이 이야기를 하던 끝에, “관동(關東) 지방 사람들의 말은 신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장안 사람들은 말을 주고 받는 어조(語調)만 좋을 뿐, 성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관동지방 사람인) 이 스님은 “그건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나는 오래 장안에 살고 있어 여기 사람들과 친교가 생기고 익숙해져 보니 인정이 못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장안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인정이 있고 부드럽기 때문에 남의 말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쾌히 승낙하는 일이 많지요.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니까 자연히 본심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관동 지방은 나의 고향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고 무뚝뚝하며 그저 기질이 강하기 때문에 첫마디에 딱 잘라 말하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지요. 그러나 넉넉하고 잘 살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한 말씨로 말했다.
이 스님의 말씨에 관동 지방 사투리가 섞여서 무뚝뚝하고 불전(佛典)의 자상한 논리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한 마디를 듣고 나니 인품이 고상하게 느껴지고, 많은 승려들 중에서 상당한 사원을 맡아서 관리할 수 있음은 이와 같은 온화한 점이 있어 위엄도 생기는 것이라고 수긍이 갔다.
4월 19일 목요일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서서히 걸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진중음(陣中吟)
이순신
임금님의 행차는 먼 서쪽에,
왕자님은 북방에서 위급한 처지.
외로운 신하는 나라 일 걱정
장사들은 공훈을 세워야 할 때.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도 움직이고
산천에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구나.
원수의 오랑캐를 모조리 멸한다면
이 한 몸 죽는대도 사양치 않으리라. 雖死不爲辭
이순신:
1545(인종 1)-1598(선조 31). 자는 여해(汝海). 식년 무과
급제. 영의정 추증.
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재하위불획호상, 민불가득이치의!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 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려 내지 못합니다.
鄭氏曰: ｢此句在下, 誤重在此. ｣
故君子不可以不脩身;
고군자불가이불수신;
思脩身, 不可以不事親;
사수신, 불가이불사친;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사사친, 불가이부지인;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의 몸을 닦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몸을 닦는 것을 생각하면, 어버이를 섬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어버이를 섬기려고 생각하면 사람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임성삼; 사람을 모르고는 부모를 섬길 수 없습니다.]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
사지인, 불가이부지천.”
사람을 알려고 생각한다면 하늘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성삼; 큰 이야기입니다.]
<도연초, 전길겸호(요시다 켕코오) 지음, 송숙경 역, 을유문고 182, 1975 년 초판, 1996 년 7 쇄>
제144단; 근위(近衛)부 경호원인 하타노 시게미가 상황전의 수호를 맡은 무사인 시모쓰케노 싱강이라는 사람을 보고, “말에서 떨어져 다칠 염려가 그 상(相)에 나타나 있으니 충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으나 싱강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말 낙마(駱馬)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 길에 깊이 통달해 있는 사람의 한 마디는 귀신과 같다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도대체 어떠한 상(相)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엉덩이가 굉장히 나온 데다가 성질이 거칠고 난폭한 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상을 알아 맞힌 것이다. 결코 잘못 맞히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4월 20일 금요일
가장 적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신에 가까운 것이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비파산에 숨어 살며
홍의장군 곽재우
속세와 절연한 뜻 벗은 깨닫고
강가에 오두막집 함께 지었네.
솔잎을 씹으니 배고픔을 모르겠고
맑은 샘물 마시니 목마르지 않아라.
거문고를 타니 담담해지는 마음
창을 닫고 조식(調息)하니 뜻이 깊어지네.
백년 세월 지나가 양(羊)을 잃은 후에야
비웃던 나를 두고 신선이라 부르겠지.
1602년 기관죄(棄官罪)로 귀양살이를 한 지 3년 만에 석방되어 낙동강 가의 창암리에서 초당을 짓고 솔잎을 양식으로 벽곡 생활을 시작할 때 지은 시.
곽재우: 1552(명종 7)-1617(광해군 9). 조식의 문인. 정시 문과에 급제했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됨. 의병장, 벼슬이 함경도 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조야가 혼탁하고 기강이 문란함을 개탄, 은둔함. 필체가 웅건 활달.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천하지달도오, 소이행지자삼:
천하에 통용되는 도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曰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昆弟也,
왈군신야, 부자야, 부부야, 곤제야, 형 곤
朋友之交也: 五者天下之達道也. 통달할 달
붕우지교야: 오자천하지달도야.
즉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벗과의 사귐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천하에 통달하는 도입니다.
[임성삼; 천하에 통달하는 도를,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이슬을 먹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에 두지 않은 것이 공자님의 개념입니다.]
知̖ 仁̖ 勇三者, 天下之達德也,
지 인 용삼자, 천하지달덕야,
所以行之者一也.
소이행지자일야.
지, 인, 용 세 가지는 천하에 통달하는 덕입니다. 그것을 행하는 길은 하나입니다.
<도연초, 전길겸호(요시다 켕코오) 지음, 송숙경 역, 을유문고 182, 1975 년 초판, 1996 년 7 쇄>
제145단; 메이웅[明雲]이라는 어느 절의 주지(住持)가 관상가(觀相家)를 만나, “나에게 혹시 검난(劍難)의 상이 있지나 않은가”라고 물은즉, 관상가는 “분명히 그러한 상이 나타나 있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건 어떤 상인가”라고 거듭 스님이 물으니, “남에게 칼을 받아서 다칠 리가 없는 스님이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계시다는 것, 그래서 그 질문을 하시는 것, 그게 바로 그러한 위난(危難)의 징조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과연 그 스님은 화살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임성삼; 묻는 상대방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기술입니다.]
4월 23일 월요일
나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시골길
이수광
강가의 버들은 사람 맞아 춤을 추고
숲속의 꾀꼬리는 나그네 노래에 화답하네.
비가 개니 산에는 생기가 넘치고
훈훈한 바람에 돋아나는 풀들.
아름다운 경치는 시 속의 그림이요, 景入詩中畵
개울물 소리는 거문고 가락.
가도 가도 시골길은 끝이 없는데
먼 산에 석양이 붉게 타는구나.
이수광: 1563(명종 18)-1628(인조 6). 호는 지봉(芝峰), 진사로 별시 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실학의 선구자. 영의정에 추증.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及其知之一也;
급기지지일야;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야 알며,
또 어떤 사람은 몹시 애써서 알기도 하는 데,
일단 알게 되면 차이가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우리는 조금 빨리 이해하는 사람은 더 깊은 곳까지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도달한 경지(境地)에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의 운전에 일단 익숙하게 되면 거의 모두 동일한 정도로 운전합니다. 운전을 더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 운전을 더 잘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겉넘으면 사고를 낼 확률이 더 높습니다.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습니다.]
* 나는 매년 많은 기업과 경영센터로터 ‘신입사원 연수’의 부탁을 받는다. 그 자리에서 언제나 강조하는 말이 있다.
1. 죽이 아니라 주먹밥의 밥알이 되자.
2. 자기를 높이 평가하며, 겸허하게 살자.
죽은 냄비 속에서 쌀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풀어진 것이다. 모으기 위해선 주걱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먹을 때도 스푼을 써야 한다. 적가락으로 한 톨 한 톨 밥알이 잡히지 않는다.
거기에 바하면 주먹밥은 쥐어도 밥알 한 톨 한 톨이 “나는 밥알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최후까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신입사원에 대하여 최고경영자는 예외없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일해주기 바란다. 벤처정신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진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덧붙인다. “사장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이지 현실은 결코 그런게 아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우선 각 부서에 배속되어 사장 아닌 직속상사의 지시 명령을 받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어서, 이 직속상관은 사장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그것이내가 말하는 죽이 아닌 주먹밥의 밥알이 되자는 것과, 동시에 자기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겸허하게 살아달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삼, 삼, 삼이란 말이 있다. 손박자가 아니고 3일, 3개월, 3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입사원이 근무가 싫어져서 그만두고 싶어지는 사이클을 말한다. 3일째, 3개월째, 3년째에 그만두고 싶어진다. 다음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자기가 갖고 있던 기업의 이미지와 현실이 전혀 틀리다.
1. Top은 실패를 두려워 말고 마음먹고 일하라 했지만 지금 배속된 부서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직속 상사가 완고하고 말이 잘 안 통한다.
1. 인간관계가 번거롭고 귀찮아 맥이 풀린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제구실하는 사원이라고 할 수 없다”고 되받는다.
사장이 한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사장의 말 뜻은 “그러한 사원이 되기 바란다. 조직에는 룰이 있으며 질서도 필요하다. 조직 내 각 계층에 대하여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 경영자(經營者)는 일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직속상관에게도 그 나름의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사장이 갖는 권한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직장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한 조직의 룰을 지켜가면서 어떻게 자기다움을 발휘해 나가는 가가 관건인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요컨대, 자기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겸허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직장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끊임없이 자기 변혁을 해나간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늘 속의 참모들, 도몬 휴유지 지음, 이강희 옮김, 도서출판 사과나무, 2001>
4월 24일 화요일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장만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九折) 양장(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 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장만: 1566(명종 21)-1629(인조 7). 호는 낙서(洛西), 생원 진사 양시 합격하고 별시 문과 급제. 종 1 품 우찬성에 이름. 문무 겸비하고 재략이 있었음. 영의정 추증.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혹안이행지, 혹리이행지, 혹면강이행지,
及其成功一也.
급기성공일야.
어떤 일을 어떤 사람은(或者)는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재치 있게 일을 하고,
또 혹자는 몹시 애써야 일을 할 수 있기도 하나,
성공하고 나면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남들보다 쉽게 혹은 재치있게 일을 수행한다고 남들보다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 인하대학교 개교기념일입니다.
* 자기개혁의 예로써 사카모도 료마를 들 수 있다. 사카모도 료마는 3단계를 걸쳐서 자기를 개혁해 나갔다. 언젠가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사카모도 씨,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이때 료마는 칼자루를 두들기면서,
“이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그 친구가 다시 물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료마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면서,
“이거요”라고 말했다. 권총은 개화된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다.
더 세월이 흐른 뒤 같은 친구가
“드디오 세상이 시끄럽게 변했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죠?”라고 물었다. 료마는 품에서 만국공법(萬國公法=국제법)을 꺼내면서,
“이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아주 상징적인 얘기다.
사카모도 료마가 맨 처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칼이다”라고 대답한 것은 무기로서의 칼을 말한 것이 아니다. 당시 료마는 상인향사(商人鄕士, 상인 출신 무사 대우)의 신분이었다. 그가 태어난 도사 번(지금의 고치현)에서는 신분차별이 아주 심했었다.
상인향사는 비가 와도 우산을 받치지 못하고, 도롱이와 모자를 썼다. 게다(일본 나막신)도 신지 못하고 짚신을 신었다. 더구나 중심가에서 도사 번의 정규 무사와 마주치면 진흙탕 속에 꿇어앉아 인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 료마가 “일본 사회에서는 무사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가 칼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무사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권총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칼보다 권총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중국 상해에서의 여러 외국의 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은 뒤떨어졌어, 외국의 문명을 더 많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화혼양예(和魂洋藝)’를 외쳤다. 화혼이란 일본인의 정신을 말함이요, 양예는 외국의 과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어디까지나 일본인의 정신을 잃지 말고, 우수한 외국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이자”라는 것이다.
나중에 료마가 국제법을 중시한다고 말한 것은 “설령 국제간의 분쟁일지라도 전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한 테이블에 앉아 어디까지나 대화로써 해결해야 된다”라는 대화 존중의 정신을 알려준 것이다.
내가 이 예를 일컫는 것은, 칼에서 권총으로, 권총에서 국제법으로의 추이가 그대로 료마의 인격의 변천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 칼이 중요하다고 말한 료마는 아직도 도사 번의 무사가 되고자 하는 도사 번민의 의식이 강하다.
1. 권총이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의 료마는 도사 번민을 벗어나 일본인이 되려고 하는 의식이 강하다.
1. 만국공법이 중요하다고 말한 료마는 이미 국제인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주시하고 있다. [임성삼; 그러나 이 국제인은 일본 혼을 가진 국제인이다.]
즉, 사카모토 료마의 칼에서 권총으로, 권총에서 만국공법으로 라는 변혁은 그가 ‘도사인에서 일본인으로, 일본인에서 국제인으로’의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에선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활동하든, 세계 어디서나 일어난 사건이 전세계로 파급된다. 세계의 흐름을 도외시해서는 경영도 못하고 일도 안 된다. 그만큼 넓은 시야와 정보 수집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늘 속의 참모들, 도몬 휴유지 지음, 이강희 옮김, 도서출판 사과나무, 2001>
4월 25일 수요일
누가 교육받은 사람인가? 첫째로, 교양있는 사람이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둘째로, 교양있는 사람이란 어떤 경우에도 용감하게 행동하고 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셋째로, 교양있는 사람이란 모든 것을 명예롭게 처리하는 자, 다시 말해서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사람과 물건까지도 정정당당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넷째로, 교양있는 사람이란 쾌락을 절제하며 불행에 빠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교양있는 사람이란 성공 때문에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김덕령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김덕령: 1567(명종 22)-1596(선조 29). 성혼의 문인. 왜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의병장. 1596년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무고로 국문을 받다 사망. 병조 참의에 추증.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자왈: “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습니다.
* 기요틴이 도입된 것은 혁명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1792년의 일로, 처형 방법을 평등하게 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감소시킨다는 명목에서였다. 이 기요틴에서만도 5만 명의 목숨이 혁명의 이름으로 죽어 나갔다. 혁명 10년 동안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70만 명, 나폴레옹의 군사 원정으로 인한 사망자가 90만 명으로 혁명은 결국 15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셈이었다.
혁명이란 불가피하게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크나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혁명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인간의 본능에는 정말로 광적인 파괴성향이 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혁명기 동안 프랑스에는 폭동과 같은 자생적 폭력과 공포정치와 같은 제도하의 폭력이 난무하였고, 오히려 혁명 이전의 상대적 평화에 비교하면 그것은 혼동 그 자체였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폭력이 구세대와의 단절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의 정치체제는 왕정이 우위에 있었고 구시대와 단절하는 데는 거의 한 세기가 더 필요했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이석우, 시공사, 2003>
4월 26일 목요일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면서 사는 것보다도 더 훌륭한 삶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보다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보다도 더 큰 만족감은 없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아내가 시를 지으라 하네
권필
낮잠 자다 일어나니 할 일이 없어
창문을 열고 작은 뜰을 내다보네.
비가 내린 후라 풀빛 더욱 푸르고
저무는 숲에선 새소리 들리는데,
아내는 운(韻)을 불러 시 지으라 하고
아이로 하여금 술 내오라 이르네,
소와 양들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 또한 사립문을 닫아 걸었네.
권필: 1569(선조 2)-1612(광해군 4). 정철의 문인. 과거에 뜻이 없어 시와 술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았음. 광해군 때 외척들의 방종을 비방하는 시를 썼다가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이르러 사람들이 주는 술을 폭음하고 다음 날 죽음.
知斯三者, 則知所以脩身;
지사삼자, 즉지소이수신;
知所以脩身, 則知所以治人;
지소이수신, 즉지소이치인;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
지소이치인, 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
이 세 가지를 알면 자기의 몸을 닦을 줄 알게 되고,
자기의 몸을 닦을 줄 알게 되면 남을 다스릴 줄 알게 되고,
남을 다스릴 줄 알면 천하와 나라를 다스릴 줄 알게 됩니다.
[임성삼의 주(註); 배우기를 좋아하고, 일을 힘써 행하고, 부끄러움을 알면 지인용(知仁勇)을 모두 갖추는 것입니다.]
* 제비꽃이라 한 것은 제비가 올 때쯤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이 꽃이 필 때쯤이면 양식이 떨어진 오랑캐들이 매년 북쪽에서 쳐내려온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오랑캐란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이지만 추위를 타지 않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그 강인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해도 좋으리라.
*
원예종으로는 향기가 좋은 사향제비꽃과 자주, 노랑,
희색이 섞인 삼색 제비꽃이 있다. 삼색제비꽃은 팬지(pansy)라고도
하는데 둘 다 야생 제비꽃이 그 원종이다. 이 두 꽃은
모두 크고 매우 아름답다.
* 나폴레옹이 제비꽃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젊은 시절 사람들이 그를 ‘제비꽃 소대장’이라 불렀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패배가 나폴레옹에게 얼마나 치명적이었던가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결국 그 때문에 1814년 3월 대불 동맹군에게 파리는 함락되고, 그의 생애에 있어 치욕적인 엘바(Elba) 섬에서의 유폐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암담한 시기에도 그의 제비꽃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귀양길에 오르면서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제비꽃 필 때 다시 오리라.”
그 후 그를 다시 옹립하려는 계획은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 때 동지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암호로 이 제비꽃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를 ‘제비꽃당의 당수’라는 암호로 불렀다.
1815년 2월 26일, 그는 엘바 섬을 탈출하였다. 루이 18세는 조약상의 세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그의 아들을 보내 주지 않았으며, 그의 아내는 정적과 간통하였고 그리고 영국은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무인도로 쫓아 버릴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3월 20일, 그의 국민들의 환호 속에 약속대로 파리에 입성하였다. 막 제비꽃이 필 무렵이었다.
영웅의 재기는 정말 극적으로 실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6월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의 패배, 이어서 7월의 파리 함락은 그 모든 기대와 꿈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설욕도 영광도 아닌 다만 남대서양의 절해 고도 세인트 헬레나(St. Helena) 섬뿐이었다. 그는 영욕의 일생을 그 곳에서 마치고 만다. 1821년 5월 5일, 폭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국화는 붓꽃이다. 붓꽃은 부르봉 왕조의 문장화였다. 만약 보나파르트 가의 시대가 좀더 오래 지속되었더라면 프랑스의 국화는 붓꽃이 아니라 제비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제비꽃은 그리스의 국화이다.
<나의 꽃 문화 산책, 손광성 지음, 을유문화사, 1996>
4월 27일 금요일
부자가 그 부를 자랑하더라도 그 부를 어떻게 쓰는가를 알기 전에는 그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비오는 밤에
권필
비 내리는 봄밤에 낙숫물 소리
노자가 한평생 사랑한 소리.
베옷으로 몸 가리고 등불 돋우며
아내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네.
凡爲天下國家有九經,
범위천하국가유구경,
曰: 脩身也, 尊賢也, 親親也,
왈: 수신야, 존현야, 친친야,
敬大臣也, 體吳臣也, 子庶民也,
경대신야, 체오신야, 자서민야,
來百工也, 柔遠人也, 懷諸侯也.
래백공야, 유원인야, 회제후야.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아홉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몸을 닦고,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고,
어버이를 어버이로 받드는 것, [임성삼; 친척을 친애하는 것]
대신을 공경하는 것,
여러 신하를 체찰(體察)하는 것,
서민을 자식과 같이 여기는 것,
모든 기술자를 오게 하는 것,
[임성삼;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기술자를 외국에 보내는 것을 국가 정책으로 삼은 듯 합니다.]
먼 곳의 사람을 유순하게 하는 것,
[임성삼; 옆의 나라가 침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렇게 부드럽게 표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후들이 따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바로하지 않으며, 외밭에서는 신들메를 고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이 격언을 모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오얏’이 무엇인지 정작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오얏 리’자 이(李)씨 중에서도 오얏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열이면 일곱은 된다. 그렇다고 이씨가 박씨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주는 중국 이름 자도(紫桃)에서 변한 말이고, 오얏은 우리 고유어인데도 말이다. ...
열매만이 아니라 꽃도 마찬가지이다. 한시(漢詩)야 어쩔 수가 없다지만 시조며 판소리 사설에서조차 고유어인 오얏꽃이 아니라 한자어인 이화(李花)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조사한 바라는 고시조 1,000여 수 가운데 ‘오얏꽃’으로 표현한 것은 단 한 수도 없었다. 이화(李花)라고 하면 배꽃인 이화(梨花)와 혼동되는 불편이 있는데도 굳이 그리 한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실제로 이런 오해가 있어서 유명한 글에 ‘옥에 티’가 된 예가 있다.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본에 대한 연구서로 호평을 받아 3개국어로 번역되기도 한 이어령의 1995년도 판 <축소지향의 일본인> 100페이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왕가에서도 문장(紋章)이라는 것을 쓰지 않았다.
이조 왕가의 문장이 ‘배꽃’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구한말(舊韓末, 아마 일본의 영향일 것이다)
때의 일이었다. (‘ ’표는 필자가 임의로 찍은 것임)
그러나 이조 왕가의 문장화는 ‘배꽃’이 아니라 ‘오얏꽃’이다. ‘오얏 리(李)’를 ‘배 리(梨)’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온 결과다.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뿐만 아니라 그들 나라 각 가문의 문장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민족성까지 날카롭게 파헤친 저자가 자기 나라 왕실의 문장을 틀리고 있으니 행여 일본 사람들이 알까 두렵다. 게다가 저자 자신이 ‘오얏 리’자 이씨이고 보니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꽃에 대한 무지가 대개 이와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오얏꽃은 살구나 복사꽃과 마찬가지로 4월에서 5월 사이에 핀다. 꽃잎은 다섯 장이고 빛은 흰 색이며 살구꽃과 마찬가지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러나 연분홍색인 살구꽃과는 달리 어름처럼 차고 희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럽게 날리는 봄의 서설로 착각할 정도이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에 붙었을 젠 눈인 줄만 여겼더니
맑은 향기 그윽하여 꽃인 줄 알겠네
열매는
7월에 익는 데 야생 상태에서는 아주 작아서 앵도나
탄알 정도이지만 개량종은 아주 크다. (...)
신라 말 도선의 비결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왕씨를 계승하는 자는 이씨이고, 그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繼王者李而都於漢陽).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이씨가 득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한양을 남경(南京)이라 하여 왕도와 같은 대우를 하는 동시에 거기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어 놓고 해마다 관리를 보내어 잘라 내게 했다.
지금 동소문 근처 낙산 일대의 옛 지명이 ‘벌(伐)리(李)골’이었다고 한다. 이는 ‘오얏나무 자르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 때부터 내려온 이름이지 싶다.
- 1953년 서울 환도(還都) 직후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창경궁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식물원 온실 용마루에 사쿠라꽃 문양이 나란히 장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마음에도 화가 났다. 해방이 된 지가 얼마인데 아직 일제의 잔재가 저렇게 버젓이 남아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해서 우리는 온실 관리인인 듯한 사람에게 항의조로 말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것은 사쿠라가 아니라 오얏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얏꽃은 조선 왕실의 문장이기 때문에 거기에 붙였다고 했다.
우리는 아니라고 우겼다. 왜냐하면 전에 보던 사쿠라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의 설명인즉 사쿠라의 화판의 끝은 하트형으로 날카롭게 패어 들어갔는데 오얏꽃의 그것은 그대로 둥글게 돌아간 것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돌아설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난번 가을에 가 보았더니 온실 용마루의 그 오얏꽃 문양은 40년 전이나 다름없이 그대로여서 여간 반갑지가 않았다.
오얏꽃이 언제 왕실의 문장이 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고종 때거나, 아니면 그 이후로 봄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우리네 식으로 말한다면 왕실 문장이란 것이 일찍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천왕 때 국화(菊花)를 황실 문장으로 삼았다.
지금도 창덕궁, 그러니까 비원에 가면 인정(仁政)전(殿) 용마루와 인정문에 각각 다섯 개와 세 개의 오얏꽃 문장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임성삼; 덕수궁 석조전의 박공 부분에도 오얏꽃 문장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의 꽃 문화 산책, 손광성 지음, 을유문화사, 1996>
4월 30 일 월요일
사냥꾼은 개로 토끼를 잡지만 아첨자는 칭찬으로 우둔한 자를 사냥한다. <소크라테스, BC 470~BC 399>
김광욱
세버들 가지 꺾어 낚은 고기 꿰어 들고
주가(酒家)를 찾으려 잔교로 건너가니
왼 골에 행화(杏花) 져 쌓이니 갈 길 몰라 하노라.
김광욱: 1580(선조 13)-1656(효종 7). 호는 죽소(竹所), 정 2품 좌참찬.
脩身則道立, 尊賢則不惑,
수신즉도립, 존현즉불혹,
자신의 몸을 닦으면 도가 확립됩니다.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됩니다.
親親則諸父昆弟不怨, 敬大臣則不眩,
친친즉제부곤제불원, 경대신즉불현,
어버이를 어버이로 친하게 지내면 형제들이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됩니다.
體吳臣則士之報禮重, 子庶民則百姓勸,
체오신즉사지보례중, 자서민즉백성권,
여러 신하를 체찰하면 선비를 예절로 대하는 것이 무게를 가지게 됩니다.
서민을 자식과 같이 아끼면 백성들을 권면할 수 있습니다.
來百工則財用足, 柔遠人則四方歸之,
래백공즉재용족, 유원인즉바방귀지,
모든 기술자가 오면 재정이 풍족하게 됩니다.
먼 곳의 사람들이 유순하게 되면 사방의 사람들이 귀순해 옵니다.
懷諸侯則天下畏之.
회제후즉천하외지.
제후들이 따르게 되면 천하가 두려워하게 됩니다.
[임성삼; 다시 한 번 되풀이.
자신의 몸을 닦으면 도가 확립됩니다.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됩니다.
어버이를 어버이로 친하게 지내면 형제들이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됩니다.
여러 신하를 체찰하면 선비를 예절로 대하는 것이 무게를 가지게 됩니다.
서민을 자식과 같이 아끼면 백성들을 권면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기술자가 오면 재정이 풍족하게 됩니다.
먼 곳의 사람들이 유순하게 되면 사방의 사람들이 귀순해 옵니다.
제후들이 따르게 되면 천하가 두려워하게 됩니다.]
* 노란 꽃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개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그래서 학명도 forsythia koreana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이름이 들어가는 몇 안 되는 학명의 하나이다.
[임성삼; 막걸리 효모의 학명이 saccharomices koranus입니다.]
개나리의 종류는 많지 않다. 세계적으로 여덟 가지 정도이며, 중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의 개나리처럼 그렇게 선명한 빛이 아니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는 충청남도와 함경북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지금 함경북도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충청남도에도 개나리가 많이 심어졌다.
중국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꽃이 매달려 있는 모양이 새의 긴 꼬리와 같다고 해서 연교(筵敎)라고 한다. 꽃이 조롱조롱 달린 모양이 조그만 황금의 종이 달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기상청 통계에 의하면, 1957년부터 87년까지 30년간의 개나리 개화일은 3월 17일(1960년)에서 4월 18일(1967년) 사이로 평균 개화일은 4월 2일로 되어 있다.
- 개나리는 서울시의 시화이다. 원래 춘천시의 시화였는데 서울시가 나중에 이를 시화로 정함으로 해서 춘천 시민들을 화나게 했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 특별시라고 이래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꽃 문화 산책, 손광성 지음, 을유문화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