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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목요일

과학은 경이로운 것이다.

생계가 걸려 있지만 않으면 말이다. <아인슈타인>

[임성삼; 공학자로서 생각할 것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을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수피 신비주의자인 하산이 위대한 여자 수피 성자인 라비야에게 갔다. 그는 방금 물 위를 걷는 법을 익혔기 때문에 라비야에게 말했다.

“함께 강으로 가서 물 위를 걸으며 영적인 대화를 잠시 나누면 어떨까요?”

라비야가 말했다.

“물 위라고? 난 그것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 구름 위에 앉아 영적인 대화를 나눕시다.”

하산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구름 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라비야가 대답했다.

“나 역시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종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강이나 구름 위로 갈 필요가 있나요?”

<세상을 거꾸로 보는 농담, 오쇼 라즈니쉬, 이여명, 정신문화사, 1996>　

7월 2일 금요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하라. <마가렛 미드>

평해(平海) 관아에서

신천

붉은 꽃 짙은 녹음 마을마다 아름다워

비온 뒤 넓은 들을 말 가는 대로.

긴 냇물 성을 감돌아 고향 마을 같은데

산 밑의 대숲은 누구의 정원인가.

신천; ?-1339. 종 2 품 판밀직사사. 안향의 문인.

* 하즈라트 모하메드가 이른 아침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어떤 부자와 함께 모스크로 갔다. 때는 여름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 여전히 그들의 집이나 길거리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부자가 매우 거만하게 모하메드에게 말했다.

“이들 죄인에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까요? 그들은 아침 기도에 참석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부자 자신도 오늘 처음으로 아침 기도에 나간 날이었다. 그 부자는 모하메드에게 과시하고 싶어진 것이다.

“모하메드, 저들은 아침 기도에 나가 본 적이 없고, 아직 게을러 잠들어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 부자가 다시 묻자, 모하메드는 그를 세우고 말했다.

“그대는 집으로 가라, 나는 모스크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부자가 놀랐다.

“왜요?”

“나의 아침 기도는 그대 때문에 허비되었다. 그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서졌다. 나는 나의 기도를 다시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대는 기억하라. 다시는 아침 기도에 나오지 말라. 그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들어 있는 것이 낫다. 적어도 그때 그들은 죄인은 아니었다. 그대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만을 이루었다. 그대의 기도는 그대에게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열쇠만을 주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농담, 오쇼 라즈니쉬, 이여명, 정신문화사, 1996>　

7월 5일 월요일

나는 표현의 자유에 찬성한다.

그것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한 말이다. <앨런 베넷>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한포 농월

목은 이색

해가 지니 모래밭 더욱 희고

구름 옮겨가니 물 다시 맑아.

고매한 사람 밝은 달을 즐기니

신선의 피리 없음이 흠이로구나.

이색; 1328-1396. 14 세에 진사가 된 후,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 정 1 품 판문하부사.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함.

* 인도인들은 바라나 시에 가서 죽으면 곧장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라나 시에서 죽는 것만으로 말이다!

카비르는 전 생애를 바라나 시에서 살았다. 임종시 그는 침대에서 갑자기 일어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서 빨리 바라나 시에서 나가자!”

제자들이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께서는 병이 깊어 의사가 몇 시간 못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가능한 한 바라나 시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제자들이 말했다.

“어디로 간다는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바라나 시에서 죽기 위해 이곳에 옵니다. 바라나 시에서 죽으면 구원받고, 곧장 천국으로 향하지 않습니까.”

카비르가 말했다.

“나는 마가로 갈 것이다.”

마가에서 죽으며 당나귀로 태어난다는 전승이 있었다.

“왜 하필 마가입니까?”

“만일 내가 마가에서 죽어 천국에 가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바라나 시에서 죽어 천국에 간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천국은 가치가 없다. 죽으면 당나귀로 태어난다는 마가에서 죽어서 천국에 가면, 그것이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만 읮하겠다.”

죽어가며,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라. 카비르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천국은 그렇게 값싼 곳이 아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농담, 오쇼 라즈니쉬, 이여명, 정신문화사, 1996>

7월 6일 화요일

양자 물리학이 혼란스럽지 않다면

당신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 못하였기 때문이다. <닐스 보어>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삼각산을 바라보며

이존오

세 떨기 봉우리가 하늘에 닿아

보이잖는 원기(元氣)가 구름에 쌓였네.

우러르면 날카로운 장검을 꽂은 듯

옆으로는 들쭉날쭉 푸른 연꽃 솟은 듯.

수년 동안 절에서 글을 읽었고

두 해 동안 한강 가에 머물었었지.

산천이 무정하다 누가 말하나,

오늘 서로 마주 보니 눈물이 나네.

이존오; 1341-1371(공민왕 20). 20 세에 문과 급제, 신돈을 탄핵하다 지방관으로 좌천. 공주 석탄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울분으로 병이나 31 세로 죽었음. 대사성 추증.

* 조광조 곁을 지킨 수많은 사람 중에서 특히 양팽손(1488~1545)의 존재는 두드러진다. 양팽손은 조광조로부터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면 지초(芝草)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서 풍기는 것과 같고

기상은 비 개인 후인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의 밝은 달과 같아

인욕(人慾)을 초월한 사람’

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평생의 지기였다.

<유림, 최인호, 열림원, 2005>　

7월 7일 수요일

나는 확고부동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그 첫 번째 원칙은 언제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버렛 덕슨>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즉사(卽事)

조운흘

한낮에야 아이 불러 사립문 열고

천천히 숲에 나와 돌이끼에 앉는다.

어젯밤 산중에는 비바람 불어昨夜山中風雨在

가득한 시냇물에 떠 오는 꽃잎들.滿溪流水핍花來 (물 수 변에 乏)

은거생활을 하면서 조정의 신하들이 귀양을 가느라 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 우의적으로 읊은 시.

조운흘; 1332-1404.

*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를 간디는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성인 간디의 예언처럼 ‘원칙 없는 정치’야 말로 국가가 멸망으로 나아가는 최고의 조건인 것이다.

<유림, 최인호, 열림원, 2005>

7월 8일 목요일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내게 데려오면

내가 당신을 위해 그를 치료해 주겠소. <칼 융>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임성삼; 융은 프로이트와 거의 같은 급의 정신분석학의 대가입니다.]

웅천강(熊川江)

강호문

강물은 아득히 바다로 들고

푸른 산 그림자 속 조각배 한 척.

백년간 남북 사람 일도 많건만

백사장 갈매기만은 자유롭구나.

강호문; 1362 년 문과 급제. 정3품 판전교시사에 이름.

子曰衆이 好之라도 必察焉하며 衆이 惡之라도 必察焉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좋아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미워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7월 9일 금요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얻으려 지옥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돈 마르퀴스>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한가한 생활

길재

시냇가 띠 이은 집에 한가로이 홀로 사니

밝은 달 맑은 바람 흥이 남아 도는 구나.

바깥 손님 오지 않고 산새만 우짖는데

대숲에 평상을 옮겨 누워서 책을 보네.

길재; 1353-1419(세종 1). 성균관 박사. 김숙자에게 성리학을 가르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로 학통이 이어짐.

酒中不語는 眞君子요 財上分明은 大丈夫이니라.

술이 취한 가운데에도 말이 없음은 참다운 군자요,

재물에 대하여 분명함은 대장부이니라.

7월 12일 월요일

우리는 모두 인심이 후하다는 명성을 갖길 원한다.

그리고 그걸 별다른 투자 없이 얻길 원한다. <미뇽 맥로린>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백운봉에 올라서

이성계

담쟁이 덩굴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암자 하나 높다랗게 백운(白雲) 속에 누워 있네.

눈 안에 드는 땅이 모두 내 것이라면 若將眼界爲吾土

중국의 강남 땅도 어찌 내 것 안되랴. 楚越江南豈不容

백운봉; 삼각산(북한산) 백운대

이성계; 1335-1408(태종 8)

耳不聞人之非하고 目不視人之短하고 口不言人之過라야 庶幾君子니라.

귀로 남의 그릇됨을 듣지 말고, 눈으로 남의 모자람을 보지 말고, 입으로 허물을 말하지 말아야 이것이 군자이니라.　

7월 13일 화요일

내가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서머셋 모옴>

당인리 근처

박목월

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나이는 들고....

한 사오백평(돈이 얼만데)

집이야 움막인들.

그야 그렇지. 집이 뭐 대순가.

아쉬운 것은 흙

오곡이 여름하는.

보리-수수-감자

때로는 몇그루 꽃나무.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자연.

너그러운 호흡, 가락이 긴

삶과 생활.

흙하고 친하고

(아아 그 푸군한 미소)

등어리를

햇볕에 끄실리고

말하자면

정신의 건강이 필요한.

당인리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괜한 소리. 자식들은

어떡하고, 내가 먹여살리는)

참, 그렇군.

한쪽 날개는 죽지채 부러지고

가련한 꿈.

그래도 사오백평

땅을 가지고(돈이 얼만데)

수수-보리-푸성귀

(어림없는 꿈을)

지친 삶, 피로한 인생

두발은 희끗한 눈이 덮이는데.

마음이 허전해서

너무나 허슬한 채림새로

(누구나 허술하게 떠나가야 하지만)

길떠날 차비를.

기도 한 구절 올바르게

못드리고

아아 땅버들 한가지만 못하게

(괜찮아, 괜찮아)

아냐.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마리만 못하게

어이 떠날가보냐.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자연.

그 품안에 쉴

한 사오백평.

(돈이 얼만데)

바라보는 당인리 근처를

(자식들은 많고)

잔잔한 것은 아지랑인가(이 겨울에)

나이는 들고.

* 공자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희극 시인이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27년에 쓴 최초의 작품 “연회의 사람들” 속에서 선동정치가들이었던 ‘데마고그’들을 풍자하며 말했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바른 사람들은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유림, 최인호, 열림원, 2005>　

[임성삼; 참으로 오래 전부터 정치가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7월 14일 수요일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에서 배운다. <버나드 쇼>

<위대한 모순어록 oxymoronica,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고즈윈, 2004>

내리막길의 기도

박목월

오르막길이 숨 차듯

내리막길도

힘에 겹다.

오르막길의

기도를 들어주시듯

내리막길의 기도도

들어 주옵소서.

열매를 따낸

비탈진 사과밭을

내려오며

되돌아 보는

하늘의 푸르름을

뉘우치지 말게 하옵소서.

마음의 심지에

물린 불빛이

아무리 침침하여도

그것으로

초밤길을 밝히게 하옵시고

오늘은

오늘로써

충만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어질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 뜨게 하옵소서.

성신이

제 마음 속에

역사하게 하옵소서.

下旬의

겨울도 기우는 날씨가

아무리 설레이어도

항상 평온하게 하옵소서.

내리막길이

힘에 겨울수록

한 자욱마다

全力을 다하는 그것이

되게 하옵소서.

빌수록

차게 하옵소서.

<한국사 傳 3, KBS 한국사 전 제작팀, 한겨레출판, 2008>

* 임진왜란 때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의병이 활약했지만 유독 곽재우 장군의 이름이 알려진 건 그가 주둔했던 곳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 때문에 해로가 막힌 왜군이 힘겹게 뚫고 올라오면 육지엔 곽재우 장군이 철옹성같이 버티고 있었다.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임진왜란 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장수로 이순신과 곽재우를 꼽았고, 한음 이덕형(1561~1613) 역시 권율(1537~1599)의 행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 그리고 곽재우가 이끈 의병들의 전투를 임진왜란의 대승으로 기록했다.

곽재우의 빛나는 성과 뒤엔 힘든 난관도 많았다. 그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 한번은 고을마다 곽재우를 죽이라는 방이 나붙었다.

곽재우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다. - <용사일기>

곽재우가 도적으로 몰린 것이다. 의병활동 초기, 도망간 수령들의 관아에서 버려진 병기를 가져온 것이 화근이었다. 곽재우를 고의로 곤경에 빠뜨린 사람은 경상감사 김수였다. 자신을 구명하기에도 부족한 처지였지만 곽재우는 오히려 김수의 죄를 처단하라고 주장한다.

김수는 나라를 망친 큰 도적으로 왜적을 맞아 한양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김수의 머리를 베어 임금께 보낸다면 풍신수길의 머리를 바치는 것보다 갑절의 공이 될 것입니다. <망우집>

왜란이 발발하자 싸워보지도 않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왜군을 피할 것을 명령했던 인물이 바로 김수였다. 그 후 김수는 경기도 용인의 광교산 전투에 참가했지만 대패하고 황급히 임지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김수는 의병들을 분산시켜서 향병 조직마저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여러 장수에게 군사를 나누어 붙임으로써 의병들이 무너지고 흩어지게 해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용사일기>

곽재우의 의병 또한 해체 위기를 맞았다. 곽재우는 이런 김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김수에게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죄값을 치르는 의미에서 자결하라고 설득한다. 곽재우의 최후통첩이었다.

곽재우: 그대가 신하의 도리를 알 것 같으면 군관을 시켜 그대의 머리를 베어 천하후세에 사죄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장차 그대의 머리를 벨 것이다.

궁지에 몰린 김수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내 마음을 달리 먹고 새벽에 함양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군관을 시켜 성을 수비하게 했다. 아울러 조정에 곽재우가 역적이라고 주장했다.

7월 15일 목요일

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때는

항상 틀릴 때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몰리에르>

나그네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지훈(芝薰)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한국사 傳 3, KBS 한국사 전 제작팀, 한겨레출판, 2008>

세종이 가장 유의한 것은 여론이었다. <세종실록> 12년 3월 5일자 기사에는 중앙과 지방의 관리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의 여론을 골로루 수렴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나와 있다. 나아가 관리들이 직접 백성들을 방문하여 여론 조사를 하도록 했다. 여론의 왜곡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첫 여론 조사를 지시한 지 8개월여, 호조에서 중간보고가 올라왔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찬성이 많으나 함길, 평안, 황해, 강원도 등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다는 결과였다. 세종은 여론을 받아들였다. 다시 공법을 의논하게 했다.

백성이 좋아하지 않으면 이를 시행할 수 없다. 공법의 편의 여부와 답사의 혜해를 구제하는 일 등을 백관으로 하여금 숙의토록 하라. <세종실록, 세종(재위 1418~1450) 12년 7월 5일>

세종이 다시 지시를 내린 지 한 달 후인 세종 12년 8월 10일, 호조에서 공법 시행에 대한 전국의 최종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찬성 9만 8000여 명, 반대 7만 4000여 명.

찬성이 우세했으나 여전히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논란은 계속되었다. 지역별 소출의 차이를 감안하여 최선의 세액을 매기는 것이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공법을 보와하는 데 6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마침내 1436년 공법 절목을 마련, 부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1438년 10월에는 세종이 직접 현지를 답사했으며, 1440년에는 경상도민의 반대 시위도 있었다. 그리고 1443년 11월, 전국적으로 공법을 실시한다는 공고를 했다. 첫 구상부터 실시까지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17년이라는 긴 시간 세종은 공법을 위해 여론을 묻고 제도를 보완한 것이다.

세종의 공법시행 과정을 놓고 이태진 교수는 “15세기 초 각 계층의 의견을 묻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임성삼; 세법을 변경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중국의 송나라는 국가 자체가 망하는 당파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광조의 새로운 법도 당파싸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런 부작용 없이 중요한 법의 변경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7월 16일 금요일

나는 평상시보다 긴 편지를 썼다.

짧게 줄일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스칼>

기계(杞溪) 장날

박목월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안 그런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혀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한국사 傳 3, KBS 한국사 전 제작팀, 한겨레출판, 2008>

세종 15년(1433년) 1월 1일은 새로 만든 편경을 선보이는 날이었다. 소리를 듣고 있던 세종이 악기 곁으로 다가왔다. 편경을 만든 실무 책임자는 악학별좌 박연이었다.

세종: 이 소리 하나가 약간 높은데 무엇 때문인가?

세종이 지적한 편경에는 먹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박연: 편경을 잘라내기 위해 친 먹줄이 아직 남아 았습니다. 제대로 다 갈지 않아서 음이 높았습니다.

먹줄 하나의 두께가 내는 음 차이를 세종이 알아차린 것이다. <실록>은 “세종의 지적대로 먹을 갈아 없앴더니 제 소리가 났다”고 적고 있다.

세종이 감지했던 먹줄 하나 두께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먼저 먹줄이 남아 있는 상태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음의 높낮이를 알아보기 위해 주파수 측정을 했다. 그런 다음 경석을 좀 더 갈아보기로 했다. 두께가 두꺼우면 음이 높고, 얇으면 음이 낮아진다.

먹줄 하나 두께만큼 갈라낸 경석의 음은 약 10센트(cent) 낮아졌다. 10센트는 반음의 10분의 1의 높이. 아주 미세한 차이다. 먹줄의 두께는 약 0.5밀리미터로 그걸 완전히 갈아내야 반음의 10분의 1, 약 10센트가 내려간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세종은 반음의 10분의 1음을 구분할 정도의 뛰어난 음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임성삼; 중학교 때 작곡 전공인 음악선생님(FM 음악방송의 해설자이셨던 한상우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당시 세계적 지휘자들은 1/7음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종대왕이 훨씬 뛰어난 감각을 가지신 분일까요?]

7월 19일 월요일

나는 종종 틀리기는 하지만, 항상 확신한다. <아이비 베이커 프리스트>

평신도의 장미

박 목 월

흰 장미와

붉은 장미가

지하에서

나의 시에 맺히는

아침의 이슬

주여

어리석은 것으로

충족한 오늘 속에서

밤의 명상과

아침의 찬송가

환한 긍정의 눈을 뜨고

마음 가난하게 살기를 다짐하는

평신도의

짧고도 힘찬 기도

진실로

당신이 누구이심을

짐작하는 것으로만

빛나는 풀잎새

흰 감자와

자주빛 감자가 알을 배는

땅밑으로 스미는

사랑의 입김.

주여

하루에 세 번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것으로

지팡이를 삼고

오늘을 사는

어리석고 충만한 자의

이마에

저녁햇살.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되는

풍요 속에서

순간 마다 피어나는

생기찬 당신의 모습.

<한국사 傳 3, KBS 한국사 전 제작팀, 한겨레출판, 2008>

* 아악을 정비한 이후 세종 13년(1431)부터 우리 음악 창제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느닷없이 세종 27년(1445) 세종의 작곡 기사가 발견된다. 세종이 새 음악을 만들었는데 “막대리로 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면서 하루저녁에 다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우리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 정간보(井間譜)도 창제했다.

세종이 작곡한 것은 여민락(與民樂)이란 이름으로 정간보로 남아 있어 지금도 연주가 가능하다. 이 곡은 임금이 행차할 때 주로 연주되었다. 백성과 함께하겠다는 세종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종이 작곡한 또 다른 음악은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이다. 정대업은 조종의 무공을 찬양한 15곡이고, 보태평은 조종의 문덕을 찬양한 11곡이다. 세종은 이 두 음악을 실제로 왕실 행사에 사용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검토했다. 비밀리에 기생과 궁녀를 불러 노래에 춤을 맞춰보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 당대에는 새 음악들이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왕과 신하들 사이에 새 음악을 왕실의 여러 행사에 써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세종의 뜻은 수양대군이 세조가 된 이후에 실현되었다. 수양대군은 세종이 작곡할 때 곁에서 도운 인물이다. 세조 6년(1460), 세조는 정재업, 보태평 등 신악을 익히고, 대신 모든 옛 음악을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오로지 아버지 세종이 작곡한 음악만을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세조 10년, 정대업과 보태평이 종며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조상의 제사에 중국 음악이 아닌 우리 음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종묘제례악이 지금까지 500년 넘게 원형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우리의 무형 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 지정(1995) 세계 문화유산이다.

7월 20일 화요일

아량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싫다. <스테이넘>

[임성삼; 이 사람은 아량이 있습니까?]

네 믿음이

-「마태복음」9장 23절

박 목 월

앓는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앓음으로 비로소

한밤에 일어나

자기의 믿음을 가늠해 보고

애절하게 주의 이름을 불러보고

간구한다.

병이 낫는다는 것은

당신의 사람이 된다는 것

요는

당신의 사람이 된다는 것

주여

당신의 보혈이

핏줄마다 서리게 된다는 것

할렐루야

당신

옷깃에 스치는 것만으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

저희 믿음으로

저를 구원하게 한

이

영원한 원리 속에서

더욱 상쾌한 새 날을 맞게 된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_우리 역사를 바꿀 34가지 오해와 진실, 이덕일 이희근, 김영사, 1999>

문익점이 원나라에 갔을 때 원과 고려 사이에는 공민왕의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공민왕은 즉위 초 원나라 순제의 황후인 기황후의 오라비 기철 같은 부(附)원(元) 세력을 주륙하고, 원나라가 설치한 정동행성의 이문소를 혁파하였으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 땅을 되찾는 등 적극적인 반원(反元) 정책을 취하였다.

이에 불만을 느낀 원나라는 공민왕 12년(1363) 고려에 홍건적이 침입해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공민왕을 폐하고 원에 와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책봉해 고려에 보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문익점 일행이 원나라로 출발한 시기와 덕흥군이 고려로 향한 시기가 같았다. 당시 원나라에 있던 고려 관리들은 공민왕과 덕흥군 중 한 명을 임금으로 선택해야 했다.

원나라가 고려 임금을 폐하고 종친을 왕으로 삼은 이런 경우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26대 충선왕과 27대 충숙왕, 그리고 28대 충혜왕 등이 모두 원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다시 즉위했던 임금들이다.

이런 전례가 있었으므로 원에 있던 고려 관리들은 이번에도 원에서 선택한 덕흥군이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고 대부분 덕흥군에게 붙어 벼슬을 받았는데 문익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나라는 최유에게 요동 군사 1만을 주어 덕흥군을 받들고 고려를 치게 했는데 이 군사는 평안도 정주까지 내려왔다가 최영과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덕흥군이 패함에 따라 그에게 벼슬을 받은 문익점은 객관적으로 역신(逆臣)이 되었다. 그런데 덕흥군을 지지했던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원나라에 남아 목숨을 부지하려 했으나 문익점 일행은 무슨 언질을 받았는지 우두머리인 계품사 이공수와 함께 공민왕 13년 10월 고려로 귀국했다.

다행히 파면에 그치면서 목숨을 건진 문익점은 고향인 진주 강성현으로 내려간다. 그는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시험재배 하는데 처음에는 재배법을 몰라 한 그루만 겨우 살게 되었다. 그러나 3년째 되는 공민왕 16년에는 같은 고을에 두루 씨를 나눠 줘 목화재배를 권장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10년이 채 안 되어 전국에 목화씨를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 재배 37년만에 모든 백성들이 무명옷을 입을 정도로 면화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문익점은 덕흥군 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당했으나, 목면 보급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왕 때 정6품직인 전의주부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사전(私田)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자리에 섰다가 역성혁명파 신흥사대보였던 조준의 탄핵으로 파면당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정치적 사건에 대한 문익점의 선택은 항상 최악의 것이었다. 이런 정치적 자세는 역성혁명에 반대하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는 것이었으나, 목면 보급에 대한 그의 공로는 독보적인 것이어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사후 태종으로부터 정2품직인 참지정부사와 강성군의 공신 칭호를 추증받았고,

세종에게는 영의정과 부민후(富民候)를 추증받았으며, 충선공이라는 시호(諡號, 시호 시)낒; 받았다.

세조는 그의 공적을 후세에 기리기 위하여, 그의 고향에 사당(祠堂)을 세우고, 그 유지비용에 충당하도록 제전(祭田)을 내여주었고, 그의 자손들에게 공신 칭호를 이어받도록 조치하였다.

정치적으로 굴절의 삶을 살았던 문익점이 부활하는 과정을 그야말로 과학정신의 승리라 할 것이다.

[임성삼; 민중에 실제적인 이로움을 준 사람을 존경한 좋은 예입니다.]

7월 21일 수요일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 <제임스 터버>

일어나라

박 목 월

일어나라 하심으로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우리는 일어나

오늘의

찬란한 새벽을 맞이 한다.

일어나라 하심으로

간밤의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

우리는 새로 마련된 빛과 그늘을

보게 된다.

오늘 나는 새는

어제의 새가 아니다.

일어나라 하심을 입어

오늘 눈을 뜬

새가

지금 숲에 지저귄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일어나라 하심을 입어

눈을 뜨게 된 것들의

그 신선한 축복으로 충만하다.

진실로 우리는

일어나라 하심으로

눈을 뜨고,

날마다 새로 마련된

첫날의 광명 속에서

오늘을 맞는

그 신선한 흥분으로

하늘을 보게 된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_우리 역사를 바꿀 34가지 오해와 진실, 이덕일 이희근, 김영사, 1999>

권율에 대한 상반된 평가, 즉 행주산성의 대승도 사실이고, 왜적과 싸우기보다 도망가는 전술, 굳이 좋게 평가하자면 피하는 전술을 즐겨 사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한번 크게 이겨보려고 마음먹고 달려들었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율은 일등공신에 책봉되고 오늘날까지 행주대첩의 영웅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원균이 상대적으로 억울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경력은 그가 불패의 신화를 지닌 용장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겁장(怯將)은 아님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임성삼; 임진왜란에서의 일등공신 세 사람이 권율, 이순신, 그리고 원균이었으므로 억울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조산의 만호(萬戶)로 있으면서 변방의 오랑캐 토벌에 세운 공으로 부령부사에 특진되었으며, 병사 이일과 시전부락(時錢部落)을 격파한 공으로 선조 25년(1592) 경상 우수사가 되었다.

[임성삼; 여기서 부락(部落)이라는 말이 역사책에서 옮긴 것이라면 대단한 발견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락이라는 말을 사용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리의 고을을 일본의 최하층 사람들이 사는 부락과 동일하게 여겨 퍼뜨린 말이라고 서강대 김열규 교수님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교수님은 우리나라 책에서 부락이라는 말을 찾지 못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순신이 자신의 실력이 아닌 유성룡과 정탁의 추천을 받아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한 것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임란 초기에 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경상좌우수영이 거의 궤멸되자 원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해서 이순신과 함께 옥포, 당포 등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만 해도 원균과 이순신은 서로 의기가 투합하는 명콤비였다.

7월 22일 목요일

죽어도 가기 싫은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다. <빌 본>

바위 안에서

박 목 월

나의 뜰에는

늦가을의 그늘이 내리고

가랑잎이 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겉치레를 벗고

저 안으로

뿌리를 내릴 때다.

참음으로

고독을

별나라까지 이르게 하여

고독 안에서

맑고 투명한 영혼의

눈동자를 얻어야 할 때다.

참음으로

고독을

무한으로 넓혀

고독 안에서 마련되는

새로운 질서의

밤과

별자리와

한밤중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빛을 얻어야 할 때다.

세속적인 그것을 위하여

열려 있는 귀를 막고

입을 봉하고

눈을 감고

인내와 고독의

바위 안에서

절대로 그분을 위하여

그분의 말씀에 따라

나의 거처가

마련되어야 할 때다.

지금

나의 뜰에는

가랑잎이 지고 있다.

잎이 지는 그 방향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 1998년 시험문제

아기가 잠자고 있거나 개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며 부러워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우리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여 그들이 비록 행복을 자각하지 못해도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란 가능한 것일까?

모범 답의 개략적인 내용;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행복’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는 것은 불행을 자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것이 동일한 의식의 몫이니만큼 설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행, 불행에 대한 자의식이 완전히 정지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상 모든 행복은 소망의 실현을 상정하고 있다.[임성삼; 아니다] 소망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충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인간 중에서도 아기들은 느낄 수 없다.

7월 23일 금요일

돈을 빌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모두 분수에 맞는 행복한 생활을 하자. <아티머스 와드>

[임성삼;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문

박 목 월

눈이 뜨자

당신의 문이 열리고

빛과 밝음의

오늘을

베풀어 주옵소서.

진리와

진리 아닌 것 사이에

빛과

어둠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문을 깨닫게 하시고

열고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열리기 위하여

닫혀 있는 문의 그

축복을 깨닫게 하옵시고

우리를 위하여

항상 빗장이 뽑혀 있는

문의 그

위대한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자는 동안

꿈에서라도

양편으로 환하게 열려 있는

당신의 문을

보게 하시고

당신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선 자의

가족적인 축복을

제게도 베푸소서.

들어서지 못한 자는

영원히 문 밖에

서성거리게 됩니다.

주여

문을 들어선 자만이

못자국이 증거해 주는

손의 축복을 입어

보혈로써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베풀어 주심으로

가질 수 있는 믿음으로

문 안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 꿈은 필요한가? - 1997년 시험문제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 기억난다. 우리는 꿈을 꾸는 동안 흘러간 시간이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우리의 꿈은 말도 되지 않고 일상에서 워낙 멀리 벗어나 있어 여기에서 어떤 효용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밤 또 다시 꿈을 꿀 것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한 일이고 우리에게 유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7월 26일 월요일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겔, 1830년, 세계 역사의 철학에 관한 강연에서>

불국사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르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997년 시험문제

*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무덤 속에 있는 눈이 카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빅톨 위고의 이 유명한 시구는 양심의 가책을 상징한다. 그래서 후회의 감정은 살인자를 쫓아다니고, 살인자는 늘 도망다니면서도 이 ‘눈’을 피하지 못해 자유를 박탈당한 것처럼 보인다.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힌 카인은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여기서 양심의 가책은 과거와 관련된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벗어나냐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과거가 없는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