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페이지 1

11월 1일 월요일

* 深則厲淺則揭(심즉려, 천즉게) 갈 려, 들 게 <시경, 북풍>

물이 깊으면 옷을 높이 걷어 올리고 건너며, 물이 얕으면 옷자락만 걷어 올리고 건너간다.

답답하기에

매월당 김시습

꽃이 바로 산속의 달력이고 花是山中曆

바람은 고요한 때의 손님일세

한스럽기는 술 사올 돈이 없고

담너머로 불러 올 이웃도 없음일세.

대숲 언덕에 찬바람 불어오고

솔숲 사이 창으론 달빛 더욱 새로운데

한가히 시 읊으며 고요함을 즐기노니,

이게 바로 도를 안다는 사람이겠지. 箇是道中人

* 자유를 두려워 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자유는 그 수혜자에게 이점을 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그런데 자유로움은, 특히 그것이 절대적일 때, 때로 불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가?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고 또 무엇과 관련되는지 알아야 할 것이기에.

근거로 삼을 규범이 없을 경우, 그가 그의 자유를 마치 귀찮은 짐 이상의, 어떤 실제 위험으로 느낄 경우는 없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자유로움을 겁낼 수는 없을까?

[임성삼; 책에 예시로 나온 답이 좋습니다. 아래는 요약입니다.]

어려운 조건에 어머니를 홀로 두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해야 할지, 반대로 단체를 무시하고 계속 어머니를 모셔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학생에게, 아무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는 답. 하지만 그의 선택이 그 개인을 넘어 인류의 개념을 개입시킨다는 걸 그가 동시에 알아야 한다는 답.

바로 이런 개념으로 볼 때 자유는 겁을 준다.

결론

감당하기 어렵다고 해서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 자유의 부담을 감내하는 방식에 있기도 하다.

모든 권리는 의무를 수반한다. 모든 자유는 책임을 수반하는 데, 그 책임을 정말 인간적 세계의 구상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꼭 감당 못할 건 아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2일 화요일

* 相鼠有皮, 人而無儀(상서유피, 인이무의) 거동 의 <시경, 용풍>

쥐에게도 가죽이 있다. 하물며 사람에게 예의나 위의가 없어서 되겠는가?

늙은 뒤에는 어찌 살거나

매월당 김시습

늙은 뒤에는 장차 어찌 살거나

방 하나 훤하게 비어 있으니

불질의 노예 되는 짓 다시는 없을 테고

꿋꿋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리라. 喩有主人公 깨우칠 유

개나리 핀 언덕으로 달이 오르고

대숲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데,

지팡이 끌면서 시 읊조리니

작은 다락 동쪽으로 꽃 그림자가 지누나.

* 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 1997년

어떤 사고나 이론을 유토피아적이라고 할 때는 그것을 깎아내릴 의도에서인 경우가 많다. 사실 유토피아는 보통의 언어에서 실현 불가능한 제안, 위험하진 않을지 모르나 쓸 데 없는 공상으로 통한다. 현실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그런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낱말의 정의는 상당히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다. 플라톤, 토머스 모어, 쌩 시몽 같은 사람들이 순전히 쓸 데 없는 꿈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 상상력을 증명하려는 의도 이상이 있었던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3일 수요일

* 魚在于渚或潛在淵 물가 저 <시경, 소아>

물가에 있는 물고기도 있고, 깊은 못 속에 숨어 있는 물고기도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한다 방언(放言) 1

매월당 김시습

좁쌀처럼 조그만 몸을 가지고

어찌 다시금 마음을 어지럽히랴.

백년이래야 겨우 한 순간인데 百年只一息 다만 지

세상 일이 너무나 가쁘기만 해라.

얻은 뒤에는 또 잃을까 걱정을 하니

어느 겨를에 주공, 공자를 떠받들 텐가.

일찍 돌아와 쉬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보기를 하루살이처럼 여기네

시냇물 소리 잔잔하게 들려오고

산빛은 우뚝이 솟아 있으니,

내 비록 마음 내키는 대로 노닌다지만

예(禮)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리. 非禮卽勿動

*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20세기는 다른 그 어느 세기보다, 특정한 국가들이 그 구성원인 개인들을 짓누르는 데 몰두한 듯 보인다.

전체주의 체제들의 상위 집중 권력은 개별적인 모든 시도, 사고조차도 금한다. 시민은 형체 없는 무리에 파묻혀,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중벌을 받는다. 그런 상황은 국가 형태의 논리적 귀결인가, 아니면 거기서 국가의 타락과 그 본분의 변질을 볼 것인가?

11월 4일 목요일

* 不敢暴虎不敢憑河 (원문; 빙의 마음 심이 없음) <시경, 소아>

감히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걸어서 강을 건너지 않는다.

[임성삼; 이 내용을 약간 변형시킨 것이 '논어'의 공자님 말씀에 나옵니다.]

그것도 또한 은총이어라 放言 2

매월당 김시습

고요한 마루 앞에 대나무 두어 줄기 幽軒竹數竿 장대 간

자그마한 뜰에는 꽃이 일만 가지. 小庭花萬種

대나무 보고 또 꽃을 보면 看竹復看花

그것도 하나의 은총이어라. 亦是一榮寵

동구 밖에선 구름 저절로 일어나고 洞口雲自生

돌 틈에선 샘물이 저절로 솟아나네. 石眼泉自涌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오락가락 거닐면서,

팔장끼고도 정치하던 옛 시절을 노래하네.

* 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는가? - 1999년

자유는 본능의 지배를 받는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이성의 동물이아고 하고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인간의 무의식을 집중 연구해온 심리학과 인문학은 여기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왔다. 과연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지, 그렇다면 어디에서 우리가 정신의 자유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지, 우리 스스로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왜 이 같은 질문 제기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 자유의 증거를 찾아보겠으며, 마지막으로 왜 자유의 실천 없이는 정신의 자유가 유지되기 어려운가를 알아보겠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5일 금요일

* 夙興夜寐 일찍 숙 <시경, 소아>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잠잔다.

[임성삼; 이러면 세상이 편해집니다.]

나 자신에게

매월당 김시습

처사(處士)는 본디 한가롭고 아담해서

어릴 적부터 큰 도를 좋아하더니,

품은 뜻과 세상 일이 서로 어긋나

티끌 세상에 발자취가 없어라.

어려서부터 이름난 산에 놀면서

어리석은 속인과는 사귀지 않았지.

만년에는 폭포 옆에서 살아가며

맑은 시냇가의 늙은이 되려 했더니,

...........

* 권력의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 2000년

권력을 가진 자가 이를 남용할 때 우리는 여기에 대한 항의와 동시에 어떤 숙명론에 부딪치게 된다. 곧 권력의 남용이 불가피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지혜롭고 덕이 높다고 평가받던 사람들도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아니면 명예이든, 권력을 소유하자마자 이를 남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렇다면 권력의 남용은 인간에게 운명지어진 것인가?

우선 어떤 조건 아래에서 권력의 남용이 인지되고 이를 고발하게 되는가를 살펴보고, 이어 어떤 이유에서 권력의 남용이 불가피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또는 제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8일 월요일

* 벌목 할 때는 받침대를 하고, 장작을 팰 때는 나무 결을 따른다. <시경, 소아>

가을 생각

매월당 김시습

가을 생각이 나를 괴롭혀

잠도 못 이루는 밤,

글 읽는 맑은 소리가

작은 창을 넘어드네.

.............

* 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점들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것이 차이성인데 차이성을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더 하다 덜 하다, 더 우수하다 덜 우수하다 등의 평가를 하게 된다. 차이성을 높고 낮음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차이가 차별로, 평등을 위한 차이성의 부정이 독재로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다양성을 말하지만 다양성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9일 화요일

* 巧言如篁顔之厚矣 <시경, 소아>

말을 음악처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낯가죽이 두꺼운 자이다.

산으로 들어갈까 생각하면서

김시습

머리 옆의 세월이 쉬지 않고 달려서

알지 못하는 새 흰 머리가 되었다.

지난 해엔 치악산에서 화전을 일구었고

그 옛날엔 금오산에서 밭을 갈았다.

산에서 마시고 시냇가에서 먹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

도(道)를 어겨 가며 사람을 따르는 것을 바란 적이 없지.

좋은 산 찾아 집이나 옮길까 다시 생각하노라니

새파란 구름 가을 빛이 두 눈동자에 들어오네.

* 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보통 사람들은 노동을 종속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물론 노동은 노동을 하는 사이 일정한 행위와 일정한 태도를 강요당하며 복종을 전제로 하고 있고, 끊임없는 주의 집중성과 강제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노동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동의 의미를 곰곰이 새겨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노동의 보다 더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

노동이 종속적인 것일 따름이라면 실업자의 불평은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실업자의 욕망에는 단순히 돈에의 욕망만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진짜로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다. 즉, 노동이 인간을 존엄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사회의 조직 구조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함으로써 우리 의식 속에 잠재하는 노동의 심층적 의미를 모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0일 수요일

* 악인도 보통사람과 같은 모습이다. 단지 무슨 짓이든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시경, 소아>

장자방의 일생을 생각하며

김시습

사람들은 자방의 꾀는 알아도

자방의 뜻은 아직 모른다네.

한(韓)나라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漢)나라를 도왔으니

한(漢)을 도움은 원래의 뜻은 아니었네.

공 이루자 용기 있게 물러난 뒤에

세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놀기를 원하였으니

몸을 보전하여 능히 일을 이루었네.

사람들이 자방의 뜻은 알아도

자방의 지혜는 아직 모르네.

제나라의 삼만호 땅을 택하라 해도

그것을 마치 초개처럼 보았네.

유(留)땅 제후에 봉해졌으면 만족하지

공명과 이익이 무슨 소용이랴.

한신, 팽월도 죽음 당했으니

총애와 녹봉 높아지면 조물주도 시기한다네.

공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그 처신 맑고도 신비로워라.

사람들이 자방의 지혜는 알지만

자방의 의리는 아직 모르네.

이미 한(漢) 나라의 은혜를 입어

내 마음속 분풀이를 다한 뒤로는,

숨쉬며 살기나 바랐을 뿐

장군이나 재상이 되려 하지 않았네.

마지막에도 상산의 네 늙은이 불러

태자의 자리를 굳혔으니

한(韓)을 위한 충성뿐 아니라

한(漢)을 위해서도 두 마음이 없었네.

......

*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는가? - 1996년

인류 역사가 투쟁과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인류가 평화를 갈구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평화라고 해서 모든 평화를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잘못 구성된, 그리고 불의를 기본으로 하는 평화가 과연 오래 갈 수 있는가? 이런 평화란 오히려 새로운 분쟁을 몰고 오지 않을까?

평화는 이상일 따름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평화라고 불렀던 것이 불의와 자주 타협하고 있었음을 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 관계에서의 ‘현실적인 시각’을 뛰어넘어 보다 지속적이며 진정한, 정의로운 평화의 가능성에 대해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1일 목요일

* 高山仰之景行行之 <시경, 소아>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큰 길을 따라가자.

티끌 속을 쏘다니는 서거정에게

김시습

산속에서 약초를 캐는 사이

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왔다지만,

내 한 몸엔 기쁨도 없고

또한 걱정도 없어라.

육조 거리 치달리는 그대,

멀리서도 알 수 있으니

더러운 티끌이 흰 머리를 덮어도

그대만은 모르리라. 不覺紅塵沒白頭

徐居正 1420~1488(세종 2~성종 19)

金時習 1435∼1493(세종 17∼성종 24)

*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 2002년

철학과 문학은 자신의 욕망을 모두 따르는 사람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곤 했다. 쾌락에 빠져 직접적인 개인적 만족만을 생각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의 경우 자기 행위의 도덕적 의미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욕망과 도덕적 행위가 서로 완전히 대립되며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그와는 반대로 개인의 욕망을 감안하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욕망의 충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도덕을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도덕적 행위는 타인을 배려하는 데서 시작되는 데 반해 욕망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인데 이러한 대립에 빠지지 않는 도덕 관념을 세우는 것이 가능할까?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2일 금요일

* 파리가 떼지어 울타리에 붙어 있네

유덕한 군자여 참언을 믿지마소. <시경, 소아>

등불을 돋우며 옛 이야기하다

김시습

산속 절에 밤 깊어들자

손으로 등잔 심지 돋우며,

웃음 섞인 이야기 도란도란

중과 함께 나누네.

참마음 지니고 와서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 부질없이 떠드는 것쯤이야

저들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 바라는가? - 2002년 출제

욕망이란 우리가 스스로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을 충족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욕망을 느끼는 사람은 내적으로 어떤 불균형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며 욕망의 충족은 (설사 일시적일지라도) 평형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욕망의 충족은 유익하며, 욕망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그것을 욕망하는 주체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의 대상을 정의하는 것도, 그 대상을 평가하는 것도 모두 주체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욕망의 대상은 긍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이 주관적이므로 그에 대한 평가는 취약하거나 근거가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좋다고 평가하는 것만을 욕망한다면 그 대상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평가는 과연 항구적일 수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5일 월요일

* 원숭이에게 나무타는 방법을 가르치지 말아라. <시경, 소아>

毋如塗塗附 진흙도

진흙탕에 진흙을 더 바르지 말아라.

낮잠을 즐기느라고

김시습

게을리 누워서 낮잠 즐기느라

한 나절 다하도록 문밖에 안 나섰네.

읽던 책들은 책상 위에 내던져 있고,

어제 보던 책들도 어지럽게 널렸어라.

향로에선 연기 피어오르고,

돌솥에선 차 달이는 소리 나기에

산에 들에 하루종일 내렸던 비로

해당화꽃 모두 진 걸 알지 못했네.

*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 1998년 출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싫어서라는 소극적 이유에서 그럴 수도 있으나, 이러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6일 화요일

* 周雖舊邦其命維新 비록 수, 바 유 <시경, 대아>

주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은 여전히 새롭다.

가난이 와도 내버려 두노라

김시습

내 스스로 궁박한 생계를 웃노니

장자의 풍도가 없음이여라.

손님이 와도 말이 없으며

가난이 와도 궁한대로 내버려 두노라.

시를 지어 그런대로 적막함을 달래고

붓을 던져 허공을 만져보려 하지만,

늙어 가도 젊은 마음 그대로 있어

소나무 뜨락에 부는 바람 흔연히 듣노라.

*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 1998년 출제

우리는 종종 어떤 행위를 두고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극도로 추악한 범죄나 노약자 학대 등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들은 격렬한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이럴 때 흔히 ‘비인간적’이라는 형용사가 사용된다.

이 때 ‘비인간적’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으로 냉혹한 행위를 가리킬 수도 있고(개를 때리거나 휴가 때 버리고 가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고문이나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비인간적’이라는 수식어는 어떤 면에서 매우 역설적이다.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비인간적일 수 있단 말인가?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7일 수요일

* 上天之載無聲無臭 실을 재 <시경, 대아>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한가하게 살면서

매월당 김시습

젊어서부터 세상 일에 뜻이 없더니

요즘 그런 생활 더욱 유쾌하다.

대숲 언덕에 이어 꽃을 심고

아가위 그늘 피해 약초 모종 낸다.

사람 발자취 드물어 이끼가 끼고

나무 그늘 깊은 곳에 거문고와 책이 있다.

예전부터 쓸모 없는 인간이더니

다시 병이 침노해 찾아오는구나.

*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 1997년 출제

한 사물이 가치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값을 하는 차라면 오래 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예술 작품은 오래 된 것일수록 더 존경 받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치란 시간적으로 오래 지속하는 것과 관계 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 역시 그와는 완전히 다른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 독특성으로 인해 나름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8일 목요일

* 천심(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임금 노릇하기 쉽지 않다. <시경, 대아>

남효온과 헤어지며

매월당 김시습

옛 사람도 요즘 사람 비슷할 테고, 昔人似今人

요즘 사람도 뒷 사람과 비슷할 테지. 今人猶後人

세상일은 흐르는 물 같아서 世間若流水

유유히 가을 가면 또 봄이 오네. 悠悠秋復春 돌아올 복

오늘은 솔 밑에서 술을 마시고

날이 밝으면 첩첩산중을 향해 갈텐데,

겹겹이 둘린 푸른 산 속에서

그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리울 테지.

*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가? - 1988년 출제

도덕적 선택을 앞두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할 때,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내면에서 결정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내면의 공간은 진정 의무의 근원인가? 우리의 내면은 외부에서 오는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19일 금요일

* 維此文王小心翼翼 <시경, 대아>

주의 문왕은 하찮은 일에도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임성삼; 왕이나 국가원수가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한낮

김시습

하늘 끝의 붉은 구름은

한낮에도 개이지 않는데,

차가운 시냇물은 소리도 없고

풀줄기는 부드러워라.

인간 세상의 유월이라면

귀찮은 더위가 한창일 테니,

산 속에서 푸른 시냇물 베고 있는 줄

그 누가 알까.

* 우리는 정념(passion)을 찬양할 수 있는가? - 1996년 출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일반적 견해 때문에 인간의 감정적 측면을 경멸적으로 바라보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수많은 철학자들은 정념(passion)을 비난했다.

정념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플라톤에서 비롯되었으며, 역사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왔다. 따라서 우리는 혹시 역사가 정념을 해로운 것이 아니라 찬양받아 마땅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단지 역설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지한 의미에서 정념을 찬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22일 월요일

* 鳶飛淚天魚躍于淵 누의 물 수가 없는 것 <시경, 대아>

솔개는 하늘까지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즐거이 노닌다.

낙엽

김시습

떨어지는 잎이라고 쓸지를 마오.

맑은 밤에 그 소리 듣기 좋다오.

바람이 불어오면 서걱서걱 소리 나고

달이 떠오르면 그림자 어수선해라.

창을 두드려 나그네 꿈 깨우기도 하고

섬돌에 덮여 이끼 무늬도 없애네.

.......

<매월당 김시습 시선, 허경진 엮음, 한국의 한시 4, 평민사, 1996>

*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 1997년 출제

철학이 이성적 담론이라고 자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자신의 기획을 통해 이성적으로) 증명하여 종교적 신앙에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앙의 비합리성과 이성의 통상적 요구 사항을 결정적으로 대립시키기보다는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더욱 정교한 개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모의 정답

중세 시대에 수많은 철학자들은 계시 진리가 이성적 진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볼 때 이성이란 신앙 앞에서 몸을 굽혀야 한다(따라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일 따름이다[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현대는 더욱 분명히 신앙이 이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심지어 “나는 연구실에 들어갈 때면 신을 옷장 속에 넣어둔다”고 말한 파스퇴르의 경우처럼 동거를 내포할 수도 있다.)

칸트가 신을 상정할 때 신앙은 전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최종 분석에서 신앙은 신의 은총에 의존하고 있다. 신앙의 내용이 이성의 내용과 동일했다면 이성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 자체의 적용 영역에도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를 넘어서는 곳에서는 이성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 존재가 전적으로 이성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11월 23 일 화 요일

* 평온한 마음의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 <시경, 대아>

산을 나서면서

김시습

까마득히 푸른 벼랑에

단풍잎은 붉었는데

한 나그네 바람처럼

지팡이 짚고 길 떠나네.

산 위의 흰 구름도

또한 정이 많아서 山上白雲亦多情

겹겹이 둘린 산 밖으로

나 보냄을 섭섭해 하네

나 또한 머뭇거리며

차마 가지 못하는데

돌다리에 개울물 소리를

듣고서야 어이하랴.

........

<매월당 김시습 시선, 허경진 엮음, 한국의 한시 4, 평민사, 1996>

*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자신의 성적을 착각하는 학생에게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할 때가 있다. 그가 피란델로의 연극을 안다면 ‘각자의 진실이 있지’라고 대꾸할 수도 있으리라. 성적 판단이 다소 주관적임을 지적하면서.

대체적으로 긍정적 가치로 인정되는 진실에 자동적으로 끌리지 않는 건 놀라와 보인다. 진실을 거부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이유인가?

결론

진실은 어떤 개념으로든 정복자적 힘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할 수 있고, 개인적 혹은 문화적 이해가 걸릴 때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특히 과학적으로) 선호하는 버전으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의무라고 주장하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여전히 의심해볼 수 있다. 정신의 자유는 그러한 대가로 있다.

11월 24일 수요일

* 廢哲不愚 <시경, 대아>

철인으로 바보 아닌 자는 없다.

[임성삼; 총명함을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어

퇴계 이황

산창에 기대 앉아 밤빛은 차가운데

매화 가지에 달이 올라 밝고도 둥글다

가느단 바람 다시 불어오지 않아도

저절로 맑은 향내 뜨락 가득 퍼진다.

뜨락을 거닐자 달이 나를 따라오네.

매화꽃 둘레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향내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쫓아도 좋은가? - 1998년 출제

플라톤 이후 진리에 대한 예찬은 수없이 있어 왔다. 그러나 진리는 어떤 달콤한 환상을 넘어설 때만이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환상에 빠지는 것은 환상이 우리 마음을 달래 주고, 우리로 하여금 근심스러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며, 우리의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진리는 거추장스럽고 때로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이는 진리가 우리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과 상식을 깨고, 지적 안일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답:

진리는 정신을 교란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 우화의 형식을 빌어 진리가 얼마만큼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동굴에 갇힌 죄수는 동굴 벽에 그려진 거짓 환영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그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태양빛의 현란함에 넑을 잃는다. 동굴 속으로 되돌아가 동굴 바깥 세계의 일들을 동료 죄수들에게 들려 주자 그들은 비웃음과 빈정거림으로 그의 이야기에 답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벽 위의 환영이 거짓된 것일지도 모르며 따라서 검토해 보아야 함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가 인간 사고의 목적임은 분명하다.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어떻든 간에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의무인 것은, 진리만이 세상의 일을 올바르게 알려 주고 어떻게 하는 것이 능률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리가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안정을 가져다 주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진리에 다다르는 길은 길고 험하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이미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고의 활동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고의 활동성이란 가치와 원리의 불완전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에서 볼 때는 어떠한 것도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세계관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축해야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따라서 진리 발견이 거부감과 나아가서는 일종의 두려움을 몰고 올 것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구 중심설이 태양 중심설로 바뀔 때 생긴 충격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갈릴레이에 대한 재판이 이를 보여 준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긴장을 요구할뿐더러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온 모든 것들을 벌릴 수 있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해온 장막의 제거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진실은 전설과 신화, 거짓 믿음과 충돌함으로써 세계에 대해 더 이상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간다.

11월 25일 목요일

* 덕은 털처럼 가벼우나, 사람들은 그 가벼운 털조차 들려고 하지 않는다. <시경, 대아>

율곡에게 지어주다

퇴계 이황

병으로 들어앉았노라고 봄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대가 오니 가슴 트이고 정신까지도 맑아졌네

이름 높은 사람 가운데 속 빈 사람이 없으니

몇 년 전에 몸 공경 다 못한 게 매우 부끄러워라

좋은 곡식은 돌피가 익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니

작은 먼지도 거울을 닦는데 해가 된다오.

실제보다 지나친 말은 시에 쓰지 말고서

노력하고 공부하며 나날이 가까이 하세.

구름 속에 살고 있는 나의 집을 떠나서

바닷가 산길을 뚫으며 돌아가겠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내심도 기르고

여행길 다니면서 풍속도 배우시게

뿌리가 튼튼하면 꽃이 빛날테고

원류가 깊으면 물결이 저절로 일게 된다네

그대여, 귀찮아 말고 이따금 편지를 보내

천리 밖의 게으른 나를 위로해 주시게.

<퇴계 이황 시선, 한국의 한시 6, 평민사, 2001>

[임성삼; 퇴계 이황 선생님이 율곡 이이 선생님께 지어 주신 시입니다.]

환상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을 앞둔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진리보다는 환상이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환상이라는 것은 그것이 지속되는 한 세상에 대한 해석을 확고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환상 자체가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는 기본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주장했듯이 종교적 신앙이 현세의 불행에 대한 보상의 요구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해서, 그리고 보호에의 갈망이 종교적 믿음을 낳는 것이라고 해서, 종교적 믿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믿음이 인식론을 능가하고 있다.

환상이란 우리의 정상적인 심리 작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정신 분석학이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과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섹스의 중요성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큰 충돌없이 보다 더 쉽게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환상은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를 우리 주변 환경에 복종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환상에는 끝이 있으며, 거짓된 것임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에게 요구한 것도 부르주아 계급이 제공하는 환상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자기가 아무리 환상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해도 벌거벗은 알몸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치로서의 진리와 환상

진리를 발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고는 세계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런 환멸이 사이비 종교를 더욱더 확산시킬 수 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마음을 달래 주기에는 진리가 너무나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보다 환상을 더 선호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환상을 선호한다는 것은 진리의 보편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숨기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진리의 통용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환상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인류가 진리를 체계적으로 회피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환상을 쫓는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결론

진리에 대한 인식은 곧 자유와 해방의 획득과도 상통한다. 그와 반대로 환상은 정신적인 노예 상태를 지속시킨다. 환자가 병이 자신에게 가져다 줄 ‘이차적인 효과’를 기대해서 치료를 거부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말하자면 단기적 이익에 따라 진리보다는 환상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비이성과 지속적인 노예 상태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11월 26일 금요일

* 思無邪 <시경, 노송>

생각에 사념(邪念)이 없다.

[임성삼; 논어에서 공자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사경에게 부치다

퇴계 이황

먼 길 걸어서 구슬같은 시를 보내 왔기에

세 차례나 읊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펼쳤네

그 가운데 함께 즐길 사람이 없어

처마 앞을 향해 웃으며 매화를 보네.

섣달 산 속이 눈과 얼음으로 환한데

문을 닫고 홀로 앉아 그대를 생각하네

글 속에 맛이 있어 마치 술과 같으니

내 입에 꼭 맞는데, 어찌 고깃국을 찾으랴.

<퇴계 이황 시선, 한국의 한시 6, 평민사, 2001>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소크라테스의 변명 1>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말에서 여러분이 지금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칫 나까지 제 정신ㅇ르 잃을 뻔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말은 그럴싸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실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한 말 가운데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경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 사람에게 속을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내가 굉장한 변론가나 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대단한 변론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나 혹시 이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변론가라고 부른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의미로 말했다면, 나는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론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 어쨌든 내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사람들은 진실한 것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내게서 모든 진실을 들으실 것입니다. 제우스 신께 맹세를 합니다마는,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내게서 들으시는 말은 이 사람들의 것처럼 아름답게 꾸미고 장식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는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꾸밈없이 솔직하게 하는 나의 말을 들으실 것입니다. 나는 내 말이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조금도 꾸미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젊은 변론가와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까닭은 분명합니다. 나같이 늙은 사람이 여러분 앞에 나와 젊은 이이들처럼 기교를 부려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 한 가지 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시장에 있는 은행 앞에서나 또는 여기저기서 가끔 이야기를 하여, 여러분 가운데는 들으신 분이 많을 줄 압니다. 나는 여기서도 그때처럼 변명하겠습니다마는, 여러분은 내 말을 가로채거나 놀리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일흔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소에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쓰는 말은 나에게는 생소한 말들뿐이니, 이 법정 안에서는 말이 서투른 나를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내 청이 무리가 아니라고 이해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마 내 어투(語套)가 좋지 못할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괞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것은 문제삼지 마시고, 오직 한 가지 일, 즉 내 말이 옳은지 옪지 않은지 그것만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재판관의 덕이니까요. 그리고 변론인의 덕은 진실을 말하는 데 있으니까요.

[임성삼; 현대의 변호사의 덕이 진실을 말하는 데 있을까요?]

11월 29일 월요일

* 直而溫 <서경, 순임금의 말>

곧으면서도 온화하게

우후(雨後)

상촌 신흠

비 그치니 정대가 고요하고

바람 부니 잠자리가 서늘합니다

시든 꽃엔 철 늦은 고움이 남았고

빽빽한 숲엔 새로운 향기 풍깁니다

맑은 꿈은 강마을로 달려갑니다 淸夢落江村

<소크라테스의 변명 2>

* 그러면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나에 대한 처음의 그릇된 고발과, 또한 나를 고발한 사라들에 대해 변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고발과 그 고발자들에 대해 변명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중에 나를 고발한 사람이 많고, 또한 그들은 벌써 여러 해 동안이나 진실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성삼; 과장법]

나는 이 사람들을 아뉘토스와 그 일파의 사람들보다 더 두렵게 생각합니다. 물론 두 번째 고발한 사람도 두렵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역주(譯註): 아뉘토스는 멜레토스측의 변호인으로, 이 공소이 주모자였다. 그는 민주파 정치가로서 소크라테스의 민주제 비판을 위험하게 생각하여 이 일을 꾸민듯하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들은 더 두려운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여러분의 대부분을 어릴 적부터 휘잡고,

“소크라테스라는 사나이가 있는데, 그는 하늘에 있는 것을 살피고, 땅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며, 약한 이론을 그럴 듯하게 들려주는 묘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오.”

하고 조금도 사실이 아닌 말을 하여 여러분에게 나를 중상해 왔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와 같은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바로 나를 고발한, 내가 가장 두료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그러한 자는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 이런 소문을 퍼뜨린 사람은 상당히 많으며, 오랫동안 나를 중상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러분에게 그러한 말을 퍼뜨린 때가 여러분이 가장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하던, 즉 여러분이 어린아이였거나 청년이었던 때였으므로, 나는 말하자면 궐석(闕席) 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무맬알한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그 중에는 희극 작가가 한 사람 끼어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공연한 질투심에서 중상(中傷)을 하려고 여러분을 속여 온 사람들(그 중에는 그들 자신도 그렇게 믿고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끌어내어 따져 보기란 전혀 불가능한 일이며, 그에게 변명을 한다는 것은 마치 그림자와 싸우는 것처럼, 대답하는 사람도 없는 데서 따지고 물어 보는 것과 같습니다.

-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를 고발한 사람들은 두 패입니다. 그 가운데 한 패는 지금 나를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패는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오래 전부터 나를 중상해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변명하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나를 중상해 온 사람들에 대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를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발보다 이 오래된 패들의 고발을 더 많이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11월 30일 화요일

* 寬而栗 <서경, 순임금의 말> [임; 순 임금의 성격.]

관대하면서도 위엄있게

인생찬가

롱펠로(1807~1882)

인생은 한낱 헛된 꿈이라고

내게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잠자는 영혼은 죽은 영혼

사물은 보기와는 다른 것.

인생은 참된 것. 인생은 진지한 것.

무덤이 그 목표는 아니어라.

그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우리 영혼을 두고 한 말은 아니리라.

우리가 가야할 길 그 끝닿은 곳은

즐거움도 슬픔도 아닌

다만 내일의 하루하루가

오늘보다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일 뿐.

예술은 길고 세월은 덧없어라.

우리의 가슴은 든든하고 용기로 차 있으나

[이하 생략]

소크라테스의 변명 3

* 이제 변명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들의 중상으로 말미암아 아테네 시민 여러분이 오랫동안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쁜 인상을, 나는 짧은 시간 안에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고 내게도 좋은 일이라면, 나의 변명이 정당한 성과를 거두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떤 성질의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변명의 결과는 신에게 맡기고, 다만 법률에 따라서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는데, 나에 대한 중상(이 중상을 믿고서 멜레토스가 고발을 제기한 것입니다)을 조작해 낸 그 처음 고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어떻게 중상하였는지 분명히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그들이 공소인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선서서(宣誓書)를 읽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천상과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약한 이론도 강한 것처럼 말하며, 또 이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범죄자로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대체로 이런 것이지요. 아마도 여러분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직접 무대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역주(譯註): 재판이 있기 24년 전인 기원전 423년에 상연된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이라는 희극. 소크라테스에 대한 내용이 있다.]

거기서는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둥지에 들어앉아 공중을 떠돌아다닌다고 뽐내며, 그 밖에 엉뚱한 말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자연에 대한 지혜[자연철학(自然哲學)]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나 나는 멜레토스에게서 그런 큰 죄에 대해 문책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내가 결코 물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하여는 여러분 거의 전부가 내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전에 내 이야기를 들은 분이 많이 계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내가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신 일이 있다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속직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고발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들으신다면 나머지 진상(眞相)을 여러분께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내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레온티노이의 고르기아스, 케오스의 프로디코스, 엘리스의 히피아스[역주(譯註): 당시의 유명한 소피스트 들] 같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지요. 그들은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그곳 청년들을 설득하여, 자기 나라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돈 안 들이고 사귈 수 있었던 청년들로 하여금 나기 나라의 동포들과 사귀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사귀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수업료를 물게 하면서도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품게 하였습니다.

12월 1일 수요일

* 去邪勿疑 <서경, 대우모편>

간사한 자를 제거하는 데는 망설이면 안 됩니다.

별빛

롱펠로(1807~1882)

밤이 다가왔다. 너무 이르지 않게

조용히 아주 조용히

..........................

정복되지 않는 의지의 별

고요하고 결연한

말없고 침착한 그 별이

내 마음속에 떠오른다.

이 짧은 시를 읽는 그대

또한 누구라 해도

그대 희망 하나하나 사라져 갈 때

굳센 의지로 냉정을 찾으라.

이 세상 무엇이든 두려워 말라.

그러면 그대 멀지 않아 알지니

괴로워하며 굳세어지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가를.

* 소크라테스의 변명 4

- 파로스 사람으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슬기로운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가 이곳에 머물러 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다른사람들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자(智者)들에게 지불한 사람, 즉 히포니코스의 아들인 칼리아스[역주(譯註): 많은 재산을 받아 그리스 제일 가는 부자였다고 한다.]를 만나 들은 이야깁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칼리아스, 만일 자네 두 아들이 망아지나 혹은 송아지라면, 그들을 감독할 사람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알맞은 훈련을 하도록 잘 지도하게 하고 그들에게 보수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자네 아들들은 사람이니, 자네는 어떤 사람을 그들의 감독자로 택하려나? 그들은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백성으로 갖추어야 할 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택해야 할 게 아닌가? 자네는 자식들이 있으니 그런 사람을 이미 알아보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하네. 어떤가. 그런 사람이 있나?

“있고말고”하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게 누군가? 그리고 어디서 온 사람인가? 또한 얼마나 받고 가르쳐 주는가?” 내가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파로스에서 온 에우에노스[역주(譯註): 파이돈에서는 시인으로 언급되고 있는 소피스트]라네. 보수는 5므나일세.”

그리하여 나는 에우에노스가 진실로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처럼 적당한 보수를 받고 가르쳐 준다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 자신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가운데는 아마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이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이오? 당신에 대한 이와 같은 중상은 대체 어디서 생겼단 말이오? 당신이 색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소문이나 평판이 떠돌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밝혀 준다면 우리는 당신에 대해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오.”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왜 내가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또 그런 중상을 받게 되었는지 여러분께 밝히려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는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아무쪼록 그렇게 알고 들어주십시오.

12월 2일 목요일

* 疑謀勿成 의모물성 <서경, 대우모편>

계획한 일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으면 실행해서는 안 됩니다.

5월은 잠깐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미국, ~1882)

햇빛 밝고 공기도 맑은데

날쌘 제비들 하늘 치솟으며 지저귄다.

장엄한 느릅나무 가지에선

봄을 알리는 파랑새의 노랫소리.

파랗게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하늘에서 흘러내린 듯,

닻을 내린 무거운 구름들이

서쪽 바람 불어오기만을 기다린다.

만물은 새롭다.

새싹도, 느릅나무 덮은 잎사귀들도

처마 밑에 남아 있는 새둥지에

지난해의 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젊음과 사랑을

처음 맛보는 그 기쁨을 맘껏 노래한다.

밤이면 포근한 하늘에서 녹아 내리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

소녀야, 그대 이 짧은 시를 읽거든

지체 말고 젊음을 즐겨라.

한창 때의 향기로움을 맘껏 누려라.

아, 5월은 잠깐이니!

사람과 젊음의 봄을 맘껏 즐겨라.

나머지는 천사들의 것.

세월이 멀지 않아 그대에게 일러주리라.

지난해의 둥지엔 어느덧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 소크라테스의 변명 5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아마도 지혜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지혜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예사로운 지혜일 것입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란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여러분께 하는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으로 들릴지라도, 떠들지 말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여러분께서 신뢰할 만한, 권위 있는 분의 말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나에게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나는 델포이의 신(神)을 내세워 증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께서는 카이레폰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이며 여러분과 같은 동지로서, 얼마 전에는 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여러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역주(譯註); 기원전 404년에 30인 독재정권이 수립되면서 많은 민주파 인사들이 국외로 망명하였다가, 이듬해 혁명 전쟁을 계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러분께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영중하는 성격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그는 언젠가 델포이에 가서 감히 신탁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니, 여러분은 아무쪼록 떠들지 마시고 내 말을 들어 주십시오.

그는 신전(神殿)에서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를 문의하였습니다. 무녀(巫女)는 더 지혜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아우가 여기 있으므로 여러분에게 증언을 할 것입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내게 대한 중상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 나는 그 신탁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대체 신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그리고 무슨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인가?

나는 나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더러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니, 신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 신이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신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분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지혜가 있다면 신탁에 반발하려고 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저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가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그리하여 나는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누군지 이름을 밝힐 것까지는 없을 줄 압니다만, 그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나는 그와 대화하면서 잘 살펴보았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거기서 다음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분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되어 왔으며, 자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분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자신은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나는 그 사람과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정을 사게 되었습니다.

[임성삼; 인류의 4대 성인 중의 한 분도 이런 경험을 하셨습니다.]

나는 혼자 돌아오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히 이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롭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나 나나 좋은 것[선(善)]과 아름다운 것[미(美)]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모르면서도 아는 듯이 생각하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으므로 분명히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이 사람보다 더 지혜가 있는 것 같다.’

그 후 나는 좀더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만, 역시 똑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나는 그 사람과 거기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처럼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괴롭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신탁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개에게 맹세하며 말합니다만,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씀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명; 맹세할 때 신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기 위해 쓰는 말.]

신의 말씀에 따라 살펴보건대, 제일 훌륭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은, 사색(思索)에 있어서는 많은 결함을 지닌 가장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로 보였습니다. 그 대신 나에게는 보잘 것 없이 생각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훌륭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신탁이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 괴로운 편력(遍歷)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해드리렵니다.

12월 3일 금요일

*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일까지 하며 백성들의 호감을 사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서경, 대우모편>

비오는 날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날은 춥고 쓸쓸한데

비 내리고 바람 그칠 줄 모른다.

담쟁이덩굴은 무너져 가는 담벼락에 아직도 매달린 채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잎이 떨어지고

날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한데

비 내리고 바람 그칠 줄 모른다.

무너져 가는 과거에 아직도 매달린 생각들

젊은 시절의 갈망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날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진정하라, 슬픈 가슴이여! 불평하지 말라.

구름 뒤엔 아직도 태양이 빛나고 있으니

너의 운명도 모든 사람의 운명과 다름없고

어느 삶에든 얼만큼의 비는 내리는 법

어느 정도는 어둡고 쓸쓸한 날들이 있는 법!

* 소크라테스의 변명 6

- 나는 정치가들 다음에 시인들을 찾아갔습니다. 즉 비극작가, 디튀람보스 작가라든지 그 밖에 많은 시인들이 있습니다.

[역주(譯註);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제사 때 그에게 바쳐지던 노래의 한 형식. 주로 신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불렀으며, 비극보다 흥겹고 세속적이었다.]

그들에게서는 내가 무식하다는 것이 곧 드러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이 정성들여 완성하였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에 대해, 그것이 지니고 있는 뜻을 물었습니다. 나는 질문으로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려고 합니다만,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시인과 함께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시인의 작품에 관해 작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시인들이 시를 짓는 것은 그들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신의 계시를 받아 마치 예언자나 점장이들처럼 타고난 재질과 영감(靈感)으로 쓰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인들은 그럴 듯한 말을 많이 하면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시인들도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그들이 시와 같은 작품을 쓴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다른 일에도 가장 지혜로운 듯이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정치가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들보다는 나 자신이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 곁을 떠났습니다.

- 나는 마지막으로 수공(手工)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 방면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였으나, 그들은 분명히 이 방면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는 잘못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방면에 있어서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로왔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이 훌륭한 기술자들도 마치 작가들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기술적인 일을 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저마다 그 밖의 일에 대해서도 가장 슬기로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허세로 말미암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마저 가리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임성삼; 배우, 방송인, 과학자 모두 이 부류에 들 수 있습니다.]

- 그리하여 나는 신탁을 대신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지혜를 가지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그들처럼 무지하지도 않은 지금 상태로 있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그들처럼 지혜와 무지를 둘 다 지니고 있는 것이 좋은가? 나는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지금의 상태대로 있는 것이 나를 위해 더 좋으리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이와 같은 탐색을 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고 적개심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중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자(智者)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반박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남이 지니지 못한 지혜를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에 있어서는 신(神)만이 참된 지자(智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탁에서 신이 말하려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신탁은 여기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하나의 예로 들고 있는 데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여, 너희들 가운데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란, 누구든지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혜가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신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거나 다른나라 사람들이거나 누구든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신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경우에는, 신의 뜻을 따라서, 그가 지자(智者)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을 하기에 분망(奔忙)한 나머지 나라 일이나 집안일에 대하여는 거들 틈이 없게 되었으며, 몹시 가난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신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 그런데 젊은이들, 한가로우며 돈도 많은 집안의 젊은이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사람들에게 묻고 따지는 것을 듣는데 흥미를 갖고, 그들도 가끔 나의 흉내를 내어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조금밖에 없거나, 또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나에게 화를 내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정말 괘씸한 사람이야. 젊은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있단 말야.”

누가 그들에게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므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답이 궁한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소피스트]을 비난할 때 쓰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 위와 땅 속의 일을 말한다느니,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느니, 옳지 않은 이론을 억지로 옳은 것처럼 만든다느니 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아는 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는 것을 폭로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명예심이 강하고 성급하며 수(數)가 많았기 때문에, 떼를 지어 그럴 듯하게 나를 비난하고 오래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몹시 중상하며 여러분의 귀를 막아 놓았던 것입니다.

12월 6일 월요일

* 형벌의 목적은 형벌을 주지 않아도 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서경, 대우모편>

찰스 강에게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굽이굽이 풀밭을 돌아

밝고 유유히 흐르는 고요한 강이여.

마침내 그대 바다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휴식을 찾으리.

4년이나 긴 세월의 온갖 느낌들

때로는 휴식 속에 때로는 투쟁 속에

바라본 그대 물결

인생이 흐르듯 소리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고요한 강이여, 그대는 내게

깊고 오래 간직될 교훈을 주었지.

그대는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으나

내가 그대에게 준 것은 노래뿐.

이따금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

나는 그대 흐르는 물결 바라보았지.

마침내 파도처럼 내 가슴에 밀려오던

그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밝고 즐거울 때도

바라보던 그대 반짝이는 물결

내 마음 더욱 가벼워

그대와 함께 뛰어 놀았지.

꼭 그 이유 때문에

내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그대 푸른 물결이

하늘빛을 닮았기 때문도 아니어라.

저 어두운 숲이 그대를 감추고

그대 물결 사라지는 곳에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살고 있었지

그러기에 더욱 그 물가를 그리워했지.

그보다도 그대 이름은

내 믿음직한 세 친구의 이름

그 이름 마력같이 그대 곁으로

가까이, 가까이 붙들어 맸네.

내 영혼 언제나 기쁨으로 기억할 친구들

내 가슴의 화롯불에

남은 불씨를 불 때

떨리는 불꽃처럼 타오르던 친구들!

그대 고요한 강이여!

내 영혼 그대에게 기우는 것은 이 때문

그대 아낌없이 베푸는 자여

내게서 이 한가한 노래일랑 거두어다오.

* 소크라테스의 변명 7

이와 같은 일로 말미암아 멜레토스와 아뉘토스와 뤼콘이 나를 공격하였습니다. 멜레토스는 작가들을 대표하였으며, 아뉘토스는 기술자들과 정치가들을 대표하고, 뤼콘은 변론가들을 대표하여 나를 미워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지금 이처럼 중상이 심하게 된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물론 이처럼 솔직하기 때문에 내가 더욱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움을 산다는 것 자체가 나만이 진실하다는 증거이며, 그러한 진실함이 나에 대한 중상의 원인이 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임성삼; 그럴까요?]

그리고 지금 당장이나 또는 장차 여러분께서 이것을 조사해 보시면, 지금 말씀드린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에 대한 첫 공소인들에 대하여는 이 정도면 충분히 변명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부터는 자칭 애국자인 멜레토스와 나에 대한 두 번째 공소인들에 대하여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무리의 공소인으로 보고, 그 공소장을 여기서 읽어 보기로 합시다. 그들의 공소장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고,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색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죄인이다.

그들의 고발 내용은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조목조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내가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멜레토스가 죄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전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일에 대하여 제법 염려하는 체하면서 사람을 함부로 재판에 걸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을 희롱하면서 진실한 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와 같은 사실을 여러분에게 밝히려고 합니다.

[임성삼: 아래에서는 멜레토스에게 질문을 하여 그의 말 꼬리를 잡아, 원하는 결론을 유도한다.]

자, 멜레토스! 이 앞으로 나와서 대답해 주게. 자네가 원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선도하는 것이 아니겠나?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선도하는 사람인지 이분들에게 말해 주게. 자네가 이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상 잘 알고 있을 게 아닌가? 자네는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찾아냈다고 하여 나를 이분들 앞에 끌러낼 정도였으니 말일세. 그러면 이들을 선도하는 사람은 누군가? 그 사람을 이분들에게 밝혀 주어야겠네.

자네는 왜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나? 이것은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내가 말한 것처럼 자네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 준다고 생각지 않는가? 어쨌든 청년들을 더 선도해 나갈 사람은 누구인가 말해 주게나.

- 법률입니다.

내가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니야. 나는 그 법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 거야.

- 소크라테스, 그것은 여기 있는 재판관들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무슨 뜻인가, 멜레토스? 이 분들이 청년들을 선도할 수 있으며 교육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단 말인가, 아니면 이분들 가운데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단 말인가?

- 이분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헤라 여신에게 맹세하지남, 자네 이야기는 청년들을 훌륭하게 선도할 분들이 많다는 것인데, 그것 참 반가운 일이네. 그러면 여기 있는 방청객들도 청년들을 더욱 훌륭하게 선도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 그들도 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멜레토스, 정무심의회 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역주(譯註); 정무심의회는 아테네의 국정을 처리하던 기관으로, 아테네 10 부족으로부터 각각 50명씩, 모두 5백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족에서 추첨으로 결정하였다.]

- 그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면 멜레토스, 국민의회에 모이는 의원들이 젊은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 아니 그분들이야말로 무두 청년들을 선도할 것이 아닌가?

[역주(譯註); 국민의회는 20세 이상의 아테네 남자로 구성되어, 나라의 중대한 문제에 관해 토의, 결정하였다.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약 1만5천에서 3만 명이었다.]

-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 이외의 모든 아테네 사람들은 다 청년들을 선도하고 있군. 그런데 나만이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크게 외치고 싶은 말아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네 때문에 난 큰 불행을 짊어지게 되었네. 그렇다면 내 질문에 대답해 주기 바라네. 말[마(馬)]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즉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말을 훌륭하게 다루는데, 단 한 사람만이 해를 끼친다고 할 수 있겠나? 아니면 이와는 정반대로 말을 다룰 줄 아는 어떤 한 사람이나 또는 소수의 사람만이 말을 다룰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다루면 말을 못쓰게 하는 것이 아니겠나? 멜레토스, 이건 말에 대한 것이지만 그 밖의 모든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자네나 아뉘토스가 반대하든 찬성하든,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익을 준다면, 이것은 청년들을 위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나.

자, 멜레토스, 자네는 지금까지 자네 자신이 청년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밝혀주었네.

[임성삼; 이상의 토론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완전히 입증한 것일까요?]

12월 7일 화요일

* 罪疑有輕, 功疑惟重 <서경, 대우모편>

죄가 의심스러우면 가볍게 벌을 주고,

공이 의심스럽더라도 무겁게 상을 준다.

오늘을 위한 기도

이해인

오늘 하루의 숲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가는

꿋꿋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때는

어느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것에 감사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8

그렇지만 멜레토스, 제우스 신의 이름으로 한 마디 더 묻겠네. 자네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서 사는 게 좋은가, 악한 시민들 사이에서 사는 게 좋은가? 대답해 주게. 내가 묻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질문이 아니니까 말이네.

악한 사람들은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겠지만, 선량한 사람들은 어느 모로나 선한 일을 행하는 게 아니겠나?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기보다 해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어서 대답해 주게. 법률은 대답을 명하고 있네. 해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말이네.

- 물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나를 여기 끌어낸 것은 청년들에게 고의로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로서인가, 아니면 고의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 자로서인가?

- 나는 고의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말해 주게. 나와 자네 사이에는 나이의 차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자네의 지혜가 그처럼 많단 말인가?

[임성삼; 이 때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가 많다고 인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악한 짓을 하지만,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을 자네도 시인하지 않았나?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면 그 사람에게서 어떤 해를 입게 된다는 것도 모른 채, 자네 말처럼 고의로 악을 행할 정도라니 (자네가 말하는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미련한 자란 말인가.

멜레토스, 나는 자네의 말을 믿을 수 없네, 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네 말을 믿지 않을 것이네. 내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말이 되네. 그렇지만 자네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네.

[임성삼;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함께 한 젊은이들 중에는 이미 나라의 반역자로 판명난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와 그 젊은이들의 사제 관계를 입증하기는 곤란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발뺌할 구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남에게 고의로 나쁜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면, 모르고 저지른 실수 때문에 사람을 이런 곳에 끌어낸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네. 그러니까 이런 곳에 끌어낼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서 가르쳐 주고 일러주어야 했을 것이네. 고의가 아닌 한, 자네가 일러주기만 했다면 분명히 그만두었을 게 아니겠나?

[임성삼; 글쎄요. 순순히 말을 들을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나에게 일러 주려고는 하지 않고 나를 이런 곳에 끌어냈네. 여기는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올 곳이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올 곳은 못되네.

자, 아테네 시민 여러분, 멜레토스는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이런 일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진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기로 합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멜레토스, 자네는 내가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네. 그러면 어떤 영향을 주었단 말인가? 자네가 낸 공소장을 보면 나라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다이몬이란 새 신을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네. 자네는 내가 이런 것을 가르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하지 않았나?

-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멜레토스,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신의 이름을, 나에게나 여기 있는 분들에게 좀더 분명하게 말해 주게. 나는 자네가 어느 쪽을 말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네. 자네는 무엇 때문에 고발을 했나? 내가 어떤 신들이 있다고 믿기를 가르치고 있다니, 즉 어떤 신들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신론자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네. 따라서 그런 점에서는 죄를 범한 것은 아니네. 그러나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신들을 믿고 있다는 점이 내 죄라고 자네는 고발하였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신을 전혀 믿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닌가?

-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을 말학 있습니다. 당신은 신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멜레토스, 놀라지 않을 수 없네. 무엇 때문에 자네는 거짓말을 하나? 다른 사람들은 해와 달이 신이라고 믿는데, 나는 믿지 않는단 말인가?

- 제우스께 맹세하지만 재판관이여, 절대로 안 믿고 있습니다. 해는 돌이고 달은 흙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멜레토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낙사고라스(Anaxagor겸s BC 500?∼BC 428?, 지금 이 재판은 BC 399)가 아닌가? 그러므로 여기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네. 마치 클라조메나이의 아낙사고라스의 책 속에 자네가 말한 얘기가 가득 씌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줄 알고 하는 말이 아닌가? 더구나 젊은이들이 내게서 그런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하나? 그런 책은 아무리 비쌀지라도 시장에 가서 1 드라크메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걸세. 소크라테스가 그런 책에 있는 학설을 자기 주장인 것처럼 내세운다면, 그야말로 조소를 면치 못할 것이네. 어쨌든 그것을 해괴한 학설이네. 나는 또다시 제우스를 걸고서 물어보겠네. 자네는 내가 신의 존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 제우스를 두고 말하지만, 당신은 신을 전혀 믿지 않소.

12월 8일 수요일

* 무고한 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법을 어겨라. <서경, 대우모편>

한밤에 노래하는 노예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 2. 27~1882. 3. 24)

큰 소리로 그는 ‘다윗’의 <시편>을 노래했다.

흑인 노예인 그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밝고 자유로운 ‘시온’을 노래했다.

밤이 이슥한 그 시간에

그는 히브리 시인의 노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 하도 곱고 낭랑하여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홍해 바닷가에서

‘파라오’와 그의 군사들을 멸망테 했을 때

검은 이집트인들에게도 들려주었던

그 승리의 노래, 신의 찬미들

그의 믿음의 목소리는

내 영혼을 신기한 감동으로 채워 주었고

그 가락은 기쁘고 아름답고

엄숙하고 격렬하면서 슬프게 들렸다.

‘바울’과 ‘시라스’는 감옥에서

부활한 주 크리스트를 노래했고

지진의 강한 팔뚝이

한밤에 토굴 문을 부숴 놓았다.

하지만 아! 어떤 거룩한 천사가

이 노예에게 기쁜 복음(福音)을 가져다 줄 것인가?

어떤 지진의 강한 팔뚝이

한밤에 그의 토굴 문을 부숴 줄 것인가?

* 소크라테스의 변명 9

멜레토스, 나는 자네 말을 믿을 수 없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자네야말로 믿고 있지 않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엔 이 사나이는 그야말로 오만불손하고 버릇이 없는 사나이 같습니다. 이와 같은 공소장을 낸 것도 건방지고 버릇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치 수수께끼를 만들어 대답해 보라고 하며 사람을 시험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임성삼; 재판관들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우스갯소리를 하며 노닥거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소크라테스나 다른 청중들을 끝까지 속일 수는 없지’하고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 사나이가 공소장 속에서 너무도 모순된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믿지 않으므로 죄를 범하고 있지만, 또한 신들을 믿고 있으므로 죄를 범하고 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소리입니다. 농담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와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어찌하여 이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혀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멜레토스, 자네는 우리에게 대답해 주게.

여러분은 내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을 잊지 마시고, 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용히 해 주십시오.

멜레토스, 세상에서는 사람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람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나?

여러분, 이 사나이가 대답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심문을 중단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멜레토스, 말[마(馬)]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 하는 일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겠나? 그러면서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퉁소를 부는 법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대체 있겠나? 만일 자네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내가 여기 계신 여러분을 위해 말하겠네. 그러나 다음 질문에는 대답해 주게. 다이몬이 하는 일은 믿으면서, 다이몬이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 없습니다.

여러분들 앞이라 할 수 없이 대답해 주었겠지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다이몬을 믿고 또한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네. 이것은 자네가 소장에도 밝혀 놓은 것이네. 그러나 내가 다이몬에 관한 것을 믿고 있다면, 다이몬을 믿고 있다는 것도 필연적인 것이 되지 않겠나? 분명히 그렇지? 자네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나는 동의한 것으로 알겠네. 그런데 우리는 다이몬을 신, 혹은 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지 않나? 그런가, 안 그런가?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주장하고 있듯이, 나는 다이몬을 믿고 있으며 또한 다이몬이 신이라 한다면, 앞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자네는 수수께끼나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되네. 즉 신들을 민지 않는 내가 다이몬을 믿고 있다면, 다이몬을 믿고 있으므로 신을 믿고 있다는 것이 자네의 주장이 될 것이네.

또한 다이몬들이 뉨페에게서나 또는 전설에 나오는 바와 같이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생아(私生兒)라고 한다면, 신의 자녀들을 믿고 있다면서 어떻게 신을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 그것은 마치 말이나 당나귀는 있겠지만, 그 새끼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역주(譯註); 뉨페는 지위가 낮은 여신. 들, 언덕, 동굴, 하천, 샘, 수목 등에 있는 여자 정령(精靈)]

멜레토스, 자네가 이런 공소장을 쓴 것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를 고발할 죄목을 찾지 못해 조작한게 분명하네. 자네가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이몬이나 신이 하는 일을 믿는 사람이 다이몬이나 신이나 반신(半神)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납득시킬 수는 결코 없을 걸세.

12월 9일 목요일

盈而不溢 영이불일 (찰 영, 넘칠 일) 國語, 월어하

가득차되 넘치지 않는다.

한그루의 나무처럼

이해인

비바람을 견뎌내고 튼튼히 선 한 그루 나무처럼,

오늘이란 땅 위에 선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견뎌내야

조금씩 철이 드나 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터무니없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가볍지 않은 웃음을 웃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좀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나보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10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멜레토스의 공소장에 있는 바와 같이 죄인이 아니라는 데에 대한 해명은 이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를 유죄가 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뉘토스가 아니라 바로 많은 사람들의 중상과 질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량한 많은 다른 사람들을 유죄로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만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함은 나로서 마지막이 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 아마도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자네는 그런 생활을 해오다가 이처럼 사형을 받게 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만일 당신이 보다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 또는 선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오래 살 수 있는가 죽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견해에 따르면 트로이아에서 죽은 반신(半神)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테티스의 아들[역주; 아킬레스]은 불명예스러운 것을 참기 보다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람은 위험한 때일수록 자기가 스스로 택하여 서게 된 위치이든, 아니면 윗사람에 의해서 배치된 자리이든, 그 자리를 지키면서 모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죽음이나 그 밖의 어떤 위험보다도 먼저 수치(羞恥)를 면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임성삼; 관자에는 다음의 말이 있습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네 개의 큰 기둥이 있다. 그것은 예(禮), 의(義), 염(廉), 치(恥)이다. -관자]

12월 10일 금요일

君求田問舍言無可采(캘 채) 위지, 진등전

군 구전문사 언무가채

그대는 밭을 사려 하고, 집값이나 물으러 다니는 사람이니,

(그대의) 말에는 채택할 것이 없을 것이다.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 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소크라테스의 변명 11

아테네 시민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전쟁터 포테이다이아[역주; 소크라테스 37세 때 참전했던 전쟁터]와 암피폴리스[역주; 47세에 참전] 그리고 델리온[역주; 45세에 참전]에서 나를 통솔하도록 여러분이 택한 상관의 명령에 따라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배치해 준 곳을 다름 사람과 함께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신의 명령에 의해, 지혜를 사랑하고 나 자신과 남들을 살피면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만일 죽음이나 그 밖의 위험을 두려워한 나머지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버린다면, 이것은 매우 합당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나를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로서 법정에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신탁을 따르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지혜가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하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어떤 면에서 사람들에게 가잔 큰 선(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죄악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이 무서워합니다.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가장 비난을 받아 마땅한 무지(無知)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여러분, 나는 이 점에서도 아마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경우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다는 것은,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즉 저 세상에 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솔직히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일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13일 월요일

天下之天下非獨陛下之天下 위지, 고당융전

천하지천하 비독폐하지천하

이 천하는 천하 사람들의 것이지, 전하 홀로의 천하가 아닙니다.

소년에게

이해인

언제나 너를 그리는 내 기억의 푸른 숲에는 한 그루 미류나무가 서 있었다.

가슴으로 잎을 피우며 바람에 키 크는 정다운 나무,

하늘 향해 겁 없이 서 있는 그 늠름한 의지를 나는 사랑한다.

너를 그리는 내 기억의 푸른 바다 위엔 희망의 배 한 척이 떠 있다.

거센 파도에 표류해도 부서지지 않는 견고한 한 척의 배,

끊임없이 전진하는 그 당당한 항해를 나는 사랑한다.

너를 생각하는 내 기억의 푸른 집에는 사색의 언어가 살아 뛰는

아담한 서가(書架)가 있다.

네가 길들여 놓은 책상이 있다.

위대한 사상과 심오한 철학과 아름다운 예술과 네가 만나는 자리.

진리에 대한 갈망과 정의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

젊음이 주는 기쁨과 그 고뇌의 향유를 나는 사랑한다.

때로는 잠을 설치며 햄릿이 되어보고 로미오가 되어보기도 하는 너를 이해하고,

시시로 가슴에 돋아나는 그 불안과 회의를,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네 씩씩한 투사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네가 어른이 되어도 소년 때의 꿈과 이상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주었으면,

너는 항상 나무처럼 곧고, 바다처럼 푸르게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너를 그리는 내 기억의 하늘 위에 지금은 노을이 타고 있다.

하얀 새 한마리 날고 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12

그러나 옳지 못한 일을 행하고, 신이거나 사람이거나 자기에게 훌륭한 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 악하고 옳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악하다고 알고 있지만 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것을, 나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라 이 재판에서 무죄로 석방된다면 벌써 여러분의 자녀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생활에 옮기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악화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당초에 여기 끌어내어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뉘토스의 말을, 친애하는 아테네 시민 여러분께서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임성삼; 믿는 판결이 납니다.]

*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놓아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우리는 당신을 놓아주기로 하였소.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지금까지 해 온 진리 탐구의 생활은 그만 두어야 하며, 그런 생활을 계속할 경우에는 사형에 처하겠소. 왜냐하면 당신의 가르침을 우리 자녀들이 생활에 옮기게 되면 모든 것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오.”

[임성삼;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이미 아테네에 해를 끼친 사람이 셋 이상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나를 석방해 준다고 해도 나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힘이 미치는 한, 지혜를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권고하며 누구에게나 내 생각을 전달하겠습니다.”

*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시민인 여러분은 지혜나 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이름을 날린 아테네 국민으로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데만, 또는 명성이나 지위에 대하여만 머리를 쓸 것이 아니라, 정신을 훌륭하게 기르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0406

12월 14일 화요일

識時務者, 在乎俊傑 촉지, 제갈량전 주

식 시무자, 재호 준걸

시무를 아는 자는 준걸이다.

[임성삼; 지금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바를 아는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다.]

우산이 되어

이해인

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 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 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 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 소크라테스의 변명 13

여러분 중 여기에 이의(異議)를 내세운다면 나는 그 사람을 붙잡아 묻고 따지며 검토할 것입니다.

그리고 덕(德)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덕을 지니고 있는 것같이 가장하는 사람에게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며 대수롭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긴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나는 젊은이나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외국 사람이건 우리나라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그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과는 더욱 인연이 깊은 만큼, 외국 사람에게보다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더욱 그와 같은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신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위해 신에 대해 봉사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선(善)은 이 나라에 일어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돌아다니며 한 일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여러분 가운데 젊은이나 노인이나 어떤 분에게나, 될 수 있는 대로 정신적으로 훌륭한 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정성을 기울이고, 그보다 먼저 신체나 돈에 관하여 마음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돈에서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말미암아 돈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게 된다”고 말입니다.

만일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겠지만, 만일 내가 이밖에 다른 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아뉘토스의 말을 따르든지 거부하든지 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놓아 주든지 죽이든지 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몇 번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15일 수요일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촉지, 선주유비전 주

물이악소이위지, 물이선소이불위

악한 일이 작다하여 이를 행해서는 안 되며,

착한 일이 작다 하여 행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임성삼; 삼국지의 유현덕이 한 말입니다.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해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악한 일도 하지 말아야 하며,

아주 작은 착한 일도 해야 한다.’]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 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 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14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제발 조용히 해주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린 것을 지켜서, 방심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도 유익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사실 이제부터 여러분께 할 말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그 말을 들으시면 고함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발 그런 짓은 삼가주십시오. 여러분께 말씀드리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나를 죽여 버린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나를 해친다기보다 오히려 여러분 자신을 해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멜레코스나 아뉘토스는 저를 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을 한 만한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다 나은 사람이 보다 못한 사람에게 해를 입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임성삼; ?]

물론 사형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하거나 시민권을 빼앗기는 일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그 사람이나 다른 모든 이들도 커다란 재앙으로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사람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죽이려는 일이야 말로 훨씬 더 큰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성삼; ?]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지금 변명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유로 해서 이 변명은 오히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나를 사형에 처한다면, 신이 여러분께 드린 선물에 대하여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하면, 나와 같은 사람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약간 쑥스럽습니다만, 나는 신으로부터 이 나라에 살도록 보내어진 사람입니다.

[임성삼; 이 말이 변명이 될까요?]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16일 목요일

泣斬馬謖 촉지, 마속전

읍참마속

울며 마속의 목을 베다.

[임성삼; 제갈공명은 이 행동으로 사기가 떨어진 군대를 통솔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통치자가 배워야 할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꽃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리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나르는

향기가 되자

* 소크라테스의 변명 15

여기 말이 한 마리 있다고 합시다. 그 말은 몸집이 크고 혈통이 좋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여느 말보다 오히려 둔하므로, 언제나 깨어 있게 하기 위하여는 등에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은 나를 마치 등에처럼 이 나라에 붙어 살면서 여러분을 일깨우고 진종일 어느 곳에나 따라다니면서 여러분을 설득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사람을 다시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내 말의 뜻을 이해하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나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여러분은 마치 선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나를 경솔하게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 여러분을 염려하여 여러분께 나와 같은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마음 편하게 여생을 잠자면서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나야말로 신께서 이 나라에 보낸 사람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밝혀질 것입니다. 나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나 자신의 일을 전혀 돌보지 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일을 염려하고 개별적으로 여러분을 찾아다니며, 마치 아버지나 형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덕을 위해 힘쓰도록 설득해 왔습니다. 이것이 모두 단순한 인간적인 행위라고 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런 일을 하여 거기서 어떤 이득을 보았다거나 보수를 받고 설교를 하였다면, 거기에 고발의 이유를 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만은 어떤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 할지라도 내가 어느 누구에게서도 보수를 받았다거나 요구한 일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증인도 증거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에 대한 나의 증거를 충분히 내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몹시 가난하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그와 같은 권고를 하고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서도, 대중 앞에 나타나서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권고하지 않았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이미 나에게 자주 들은 것입니다.

* 나에게는, 뭐랄까, 신의 음성이라고 할까 또는 다이몬의 음성이라고나 해야 옳을까.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이와 같은 일이 시작되어 어떤 음성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날 경우에는 언제나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것이었지, 어떤 일을 하라고 권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나라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옳은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충분히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만일 내가 일찍이 나라 일에 관여하였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며, 여러분이나 나 자신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17일 금요일

蛟龍得風雨終非池中物 오지, 주유전

교룡득풍우 종비지중물

(그는) 연못(과 같은 작은 곳) 속에서 살 사람이 아니다.

용이 바람과 비를 얻으면

연못 속에 끝까지 살지 않는다.

[(그는) 연못(과 같은 작은 곳) 속에서 살 사람이 아니다.]

[임성삼; 그러나 용도 처음에는 작은 연못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전하는 말로는 1000년을 연못에서 산답니다.]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 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16

* 내가 이처럼 진실을 말할 때, 여러분은 노여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에 대하여나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호소하고 싶습니다. 나라 안에서 부정과 위법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쓰는 자라면, 목숨을 보존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진실하게 싸우려는 사람이 잠시나마 목숨을 보존하려 한다면, 개인으로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모르되 공인(公人)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지금까지 공직을 가진 일이 없습니다. 다만 한번 정무심의회 의원이 된 일은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속해있던 안티오키스 부족의 집행부 일을 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해전(海戰)에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지 않았다[기원전 406년]는 이유로 열명의 장군들을 한꺼번에 재판에 돌리기로 의결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결은 나중에 여러분께서 모두 인정한 것처럼 법에 어긋난 처사였습니다.

그 때 집행부 위원들 가운데는 오직 나 혼자만이 여러분의 의견에 반대하였으며, 법에 어긋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고 반대 투표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위원들은 나를 곧 고발하고 체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도 나를 반대하여 목청을 높였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도, 투옥이나 사형을 두려워하여 부당한 의결을 하는 여러분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법률과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성삼; 직접 민주주의가 가장 잘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는 아테네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면 투옥이나 죽음의 위협을 받았었습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은, 과두정치가 이루어진 후에 30명의 혁명위원들이 나를 다른 네 사람과 함께 불러 살라미스 사람인 레온을 죽이겠다며 그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이와 비슷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 형식으로 명령했는데, 그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그들의 범행에 끌어들이려는 심산에서 였습니다.

그 때에도 나는 말로서가 아니고 행동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의(不義)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또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쑥스러운 일이지만, 그 당시의 지배자들은 매우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협하여 옳지 못한 일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물러나온 후, 다른 네 사람들은 살라미스 지방으로 가서 레온을 연행해 왔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만일 그 정권이 곧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일로 말미암아 사형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도 여러분에게 많은 증인을 내 세울 수 있습니다.

* 여러분, 만일 내가 공무(公務)에 종사하면서 착한 사람에게 합당하도록 정의를 돕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면, 내가 이처럼 오랜 세월을 무사하게 살아 남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테네 시민 여러분,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0일 월요일

琥珀不取腐芥吳志, 우번전

호박 불취 부개

호박과 같이 아름다운 주옥은 부패된 티끌을 흡수하지 않는다.

12월의 엽서

이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 소크라테스의 변명 17

* 나는 내 생애를 통하여 공무로 무슨 일을 하였거나 또는 개인적으로 무슨 일을 하였거나 똑 같은 행동만 하였습니다. 즉 나는 정의에 어긋나는 일에 대하여는 어떤 일에나, 누구에게나 양보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를 숭상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제자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주(註); 알키비아데스 같은 전범(戰犯)자나 크리티아스 같은 독재 정권의 범죄자들을 가리킴]에 대하여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어떤 사람의 스승이 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거나 나이 많은 사람이거나, 나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면 들려주기를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아야 이야기를 해 준다던지, 돈을 받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 따위의 일도 없었습니다.

나는 부자나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한결같이 질문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서슴지 않고 무엇이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훌륭하게 되거나 또는 그렇게 되지 못한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나는 아직 어떤 사람에게도 지식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으며, 따라서 가르친 일도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내게 배웠다고 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임성삼; 인류의 위대한 스승께서 스승이라는 것을 부인하셨습니다. 못난 제자들로 인해서...]

*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을까요?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그 이유를 이미 들으셨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즉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으면서 사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따지고 묻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신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신탁을 통해 그와 같은 전달을 받기도 했으며, 꿈으로 전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신께서 인간에게 무슨 일을 명할 때 쓰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을 받았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며, 또한 쉽사리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1일 화요일

耕當問奴織當問婢송서, 심경지전

경당문노 직당문비

밭을 가는 것은 당연히 남자 종에게 묻고, 베짜기는 당연히 여자종에게 물어야 한다.

[임성삼; 세종대왕 재위시절, 대왕께서 외교문서를 고치라고 말씀하시자,

담당자가 위의 말을 하며 자기의 원래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런 공무원이 있어야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소크라테스의 변명 18

* 만일 내가 청년들에게 정말로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들 중에는 벌써 장년이 되어 자기가 젊었을 때 내게서 어떤 나쁜 권고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여기 나와서 나를 고발하고 복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사람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의 집안 사람들, 즉 아버지나 형제들이나 그 밖의 친척들이, 그 집안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슨 해를 입었다고 폭로하여 그것을 복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 그럴 사람이 많이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저기 크리톤이 와 있습니다. 그는 나와 동갑이며, 같은 구(區)에 살고 있는 주민이고, 여기 있는 크리토불로스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스페토스구의 뤼사니아스는 아이스키네스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저기에는 캐피시아구의 안티폰이 있습니다. 그분은 에피게네스의 아버지입니다.

그 밖에도 그들의 형제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와 있습니다. 테오조티도스의 아들인 니코스트라토스도 와 있습니다. 그는 테오도토스의 형제이기도 합니다만, 테오도토스는 이미 죽었으므로 자기 형제에게 고발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쪽에는 파랄리오스가 와 있습니다. 그는 데모도코스의 아들이며 데아게스의 형제입니다. 그는 아리스톤의 아들이요, 플라톤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아폴로도로스의 형제인 아이안토로스도 와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을 여러분에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멜레토스는 그 중의 누군가를 자기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만일 잊고 있었다면 지금 내세워도 좋고, 그렇게 한다면 나는 발언권을 양보하겠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하게 하십시오.

[임성삼; 알키비아데스 같은 전범(戰犯)자나 크리티아스 같은 독재 정권의 범죄자, 또 그 외의 명확한 예를 고발한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정반대되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분들은 모두 나를 도와 주려고 온 것입니다. 고발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른다면, 나는 그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의 가족에게 악한 일을 했을텐데 말입니다. 해를 입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려고 왔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 즉 이미 나이가 많은 분들, 그들의 친척들은 무슨 이유로 나를 도와주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지 멜레토스는 거짓말쟁이이며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즉 내가 정당하며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임성삼;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단언하기 위한 증거로 충분한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2일 수요일

小事糊塗, 大事不糊塗 송서, 여단전

소사 호도, 대사 불호도

작은 일은 호도(풀로 붙임)해도 좋으나, 큰 일은 튼튼히 해야 한다.

진흙도(칠하다)

[임성삼; 그러나 작은 일을 적당히 처리해 버릇하면,

큰 일도 튼튼히 하기 어렵습니다.]

少年을 爲한 牧歌

신 석 정

소년아

인제 너는 백마를 타도 좋다

백마를 타고 그 황막한 우리 목장을 내달려도 좋다

한때

우리 양들을 노리던 승냥이떼도 가고

시방 우리 목장과 산과 하늘은

태고보다 곱고 조용하고나

소년아

너는 백마를 타고

나는 구름같이 흰 양떼를 데불고

이 언덕길에 서서 웃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웃으며

황막한 그 우리 목장을 찾어

다시오는 봄을 기다리자

--- 1939 ---

* 소크라테스의 변명 19

* 여러분, 변명은 이 정도로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거의가 비슷한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자기 자신의 경우를 회상하고 화를 내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보다 사소한 고발 사건으로 싸울 때에도, 당사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동정을 얻기 위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기의 자매나 집안사람들을 모두 동원하여 재판관들에게 애원하고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매우 곤경에 빠져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노여워하면서 유죄 투표를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에게 나는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나에게도 몇 사람의 가족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글귀와 마찬가지로, 나도 참나무나 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몇 사람의 가족이 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더구나 아들이 셋이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장성(長成)했지만, 둘은 아직 어립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여기 데려다, 여러분에게 무죄 투표를 해달라고 애원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왜 그런 일을 하려고 들지 않을까요? 아테네 시민 여러분, 그것은 내가 건방진 때문도, 여러분을 경멸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가 죽음에 직면하여 태연하고 태연하지 않은 것은 별문제로 하고, 어쨌든 나를 위해서나 여러분을 위해서 또는 나라 전체를 위해서 여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결코 그런 처사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나이가 되어서, 또한 그것이 정말이든 거짓말이든 그런 이름[주(註); 지자(智者)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처지에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3일 목요일

浩浩如黃河東注 클 호 위서, 최광전

호호 여 황하동주

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 같이 넓고 유유하구나.

[임성삼; 최광이라는 분의 성품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런 분이 그리워집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

용 혜 원

희망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고 밝게 빛난다

마음이 열리고

힘이 샘솟고 용기가 생겨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을 향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한다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에 펼쳐질 일들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땀 흘리는 기쁨을 알고

어떠한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기도하며 이겨내고

서로를 신뢰해주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눈빛은 빛을 발한다

머뭇거림과 서성거림이 사라지고

리듬감과 생동감 속에 유머를 만들며

열정을 다 쏟아가며

뜨겁게 살기를 원한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0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보다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지혜나 용기 또는 그 외의 어떤 덕에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매우 훌륭한 인물로 여겨지던 사람들이, 일단 재판을 받게 되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죽지 않을 듯이, 사형당하는 것을 마치 무서운 함정에라도 빠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를 욕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보고 외국 사람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아테네 사람들 중에 두드러진 덕을 가진 훌륭한 인물이랍시고 뽑아 관직이나 명예 있는 자리에 앉혀 놓았지만, 그들도 부녀자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4일 금요일

十羊九牧 수서, 양상희전

십양구목

양 열 마리에 목동이 아홉이구나.

[임성삼; 우리나라의 공무원 숫자가 알맞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만나면 편한 사람

용혜원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대를 만나면

얼굴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히 사랑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고만 있어도 좋고

만나면 오랫동안 같이

속삭이고만 싶습니다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고

영화를 보아도 좋고

한 잔의 커피에도 행복해지고

거리를 같이 걸어도 편한 사람입니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고

가까이 있어도 부담을 주지 않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고

만나면 편안한 마음에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잊도록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대는 순하고 착해

내 남은 사랑을 다 쏟아 사랑하고픈 사람

나의 소중한 꿈을 이루게 해주기에

만나면 만날수록 편안합니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한 정겨움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1

그러므로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명성 있는 시민이라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할 경우에는 묵과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경우에, 태연하게 재판을 받는 사람보다 나라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를 훨씬 더 엄중하게 처단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임성삼;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으면서 재판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여러분, 재판관들에게 청탁을 한다거나 또는 무죄가 되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을 가르치고 설득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옳고 그른 것을 판결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편을 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자기 기분에 맞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실(情實)에 치우치지 않고 법률에 따라 재판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서약을 깨뜨리는 습관을 붙여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런 습관을 붙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신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임성삼; 서양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므로, 서약을 어기는 일은 신을 공경하지 않는 일이 됩니다. 우리에게 없는 풍습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이 기독교가 퍼지기 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훌륭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으며 경건하지도 않은 행동을 나에게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여기에 있는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었으므로, 제발 그런 요구는 하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무례한 부탁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신의 존재를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되며, 변명을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신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나를 고발하고 있는 어떤 사람 못지않게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나 여러분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판결을 내리도록, 여러분께 맡기는 동시에 신께도 맡기고 있습니다.

[임성삼; 이상이 첫 번 재판의 변명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주(註):

투표; 결과 유죄 280표, 무죄 220표.

아테네에서는 공소의 종류에 따라 첫 번째 표결에서 형량이 정해지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불경죄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 때는 유죄와 무죄의 판결 후 원고가 먼저 형량을 제의하고, 이어서 피고가 다른 형량을 제의한 후 재판관이 선택한다.]

12월 27일 월요일

百萬買宅, 千萬買鄰 남사, 여증진전

백만 매택, 천만 매린

백만 전으로 집을 사고, 천만 전으로 이웃을 산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혜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욕심 많은 세상에서

탐내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서두르는 세상에서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허망한 세상에서

서로를 지키며 약속할 수 있는 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미움 많은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2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나에게 유죄 판결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결과에 대해 분개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투표수 분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차이가 이렇게 적을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히 차이가 훨씬 더 많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대표가 단지 35표만 더 나왔더라면 나는 무죄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뉘토스와 뤼콘이 나를 고발하기 위해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멜레토스는 투표수의 5분의 1도 얻지 못하여 1천 드라크메의 벌금을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주(註); 경솔한 고발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100표를 못 얻으면 이런 벌금을 내야 했다.]

* 이 사람은 나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어떤 형을 제의해야 할까요?

아테네 시민 여러분, 물론 적당한 형이라야 하겠지요. 그러면 그것은 어떤 형일까요? 내가 일생 동안 조용히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형을 받아야 마땅하겠습니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돈을 번다든지 집안일을 살핀다든지 하는 일, 군대를 지휘하고 백성을 지도하는 일, 그 밖에 관직을 갖는다든지 또는 정당에 들어가 정치 활동을 하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떠한 형을 받아야 하고, 얼마나 벌금을 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이와 같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갖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도 정직하여 목숨을 보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이나 여러분을 위하여 아무런 이득이 없는 곳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오직 내가 가서 많은 사람에게 이득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만 다녔습니다. 즉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이 사려(思慮)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겨 놓았습니다.

* 나는 하나하나의 사람을 설득하며, 그 사람이 스스로 선하고 슬기로워지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완성하기보다는, 나에게 속한 것이나 그 밖의 일에 대하여도 이와 같이 마음을 기울이려고 애써 왔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해온 내가 어떤 형을 받아야 합당하겠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8일 화요일

八斗之才 남사, 사령운전

(천하의 재주가 열 말이면 그는) 여덟 말의 재주를 가졌다.

조자건의 고사, 천하의 모든 시인이 한 섬의 재주를 가졌다면 그 중 조자건은 혼자서 여덟 말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용혜원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내가 해준 말 한마디 때문에

내가 준 작은 선물 때문에

내가 베푼 작은 친절 때문에

내가 감사한 작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작은 미소 때문에

내가 나눈 작은 봉사 때문에

내가 나눈 사랑 때문에

내가 함께 해준 작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 기뻐할 수 있다면

내일을 소망하며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3

아테네 시민 여러분, 만일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야 합당합니까? 그것은 나에게 가장 적합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친절을 기울인 사나이는 가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여 한가해야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사람은 ‘프뤼타네이온’에서 접대를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주(註); 프뤼타네이온은 국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외국 사절, 국가의 공로자, 올림피아 우승자 등이 공식 향응을 받았다.]

내가 그곳에서 접대를 받는다면, 올림피아 경기에서 두 필이나 혹은 네 필이 말로 마차 경기를 하여 우승을 거두고 그곳에서 접대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어울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러분을 즐겁게 해 주었을 뿐이지만, 나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양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나에게는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올바르게 나에게 어울리는 형(刑)을 제안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프뤼타네이온’에서 접대를 받는 것입니다.

[임성삼; 이미 유죄 판결을 받고, 고소자(지금의 검사 역할)가 사형을 요구(지금의 구형)한 상태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 유공자로 최고의 대우(지금의 국민훈장 무궁화장)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판사가 어이없어 할 것입니다.]

-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마도 여러분께서는 저의 앞서의 변명과 마찬가지로 건방지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까닭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고의로 나쁜 일을 하거나 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과 오랫동안 이야기 할 수 없었으므로 여러분께서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처럼[주(註); 여기의 다른 나라는 스파르타를 가리킨다고 함], 사형 재판은 하루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을 두고 하도록 되어 있다면, 나는 충분히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처럼 짧은 시간에 그렇게 큰 중상(中傷)을 해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임성삼; 첫 번째 공판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변명은 이 정도로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거의가 비슷한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를 입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내가 무슨 까닭에 사형을 당해야 합니까?

* 그러면 어떤 처벌을 선택하여 여러분 앞에 제의해야 하겠습니까?

구류(拘留)를 신청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형무서 안에서 때에 따라 임명되는 열 한 명의 형무관의 종노릇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제가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주(註): 10부족에서 해마다 한 명씩 선출하고 서기 한 명을 두었는데, 이들이 사형의 집행과 수형자(受刑者)들의 감독을 맡았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는 벌금을 낼 돈이 없습니다.

국외 추방을 제의할까요? 아마도 여러분은 나를 위해 그런 형을 선고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택한다면 나는 생명에 애착을 느끼는 것이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29일 수요일

學者如牛毛成者如麟角 북사, 문원전서

학자의 수는 소 털 같이 많으나, 제대로 이루는 사람은 기린의 뿔과 같이 희귀하다.

삶

용 혜 원

목숨이란

실타래를

감는 것일까

푸는 것일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느낌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늘 숨막히게

스스로 옥죄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삶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똑같은 나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마음가짐에 따라

삶이 다 다르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4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나와 같은 시민이면서도 내가 평소에 하는 일과 말하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두통거리가 되고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저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외국 사람인들 참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하긴 이와 같은 나이에 외국으로 추방되어 이 나라 저 나라로 쫓겨 다니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나에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어디를 가거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젊은이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들을 피한다면 그들은 어른들을 동원하여 나를 쫓아내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그들을 피하지 않으면 그들의 부형(父兄)들은 자기 자녀를 위해 나를 쫓아낼 것입니다.

혹,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당신은 이곳을 떠나서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겠소?”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을 설득시키기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신에 대한 불복종이 되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 없다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여러분은 농담으로 받아넘기고 나의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덕과 그 밖의 다른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과 남을 살피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선(善)이요, 이와 같은 생활만이 인간에게 가장 보람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여러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믿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어떤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만일 나에게 돈이 있다면 내가 낼만한 과료(科料)를 제의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나에게 조금도 해로울 것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돈이 없습니다.

허나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여러분께서 나에게 선고해 주신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아마도 1므나라면 여러분에게 지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벌금으로 제의할 수 있습니다.

[임성삼; 1므나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참고로 이 시대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한나라 초기에도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 막대한 돈을 내면 형을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그런데 플라톤과 크리톤과 크리스토불로스와 아폴로도로스가 지금 여기와서 30므나와 과료를 내겠다고 제의하라는군요. 그들이 보증을 서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보증인이 될 것입니다. 착실한 사람들이니까요.

[임성삼; 만일 1므나가 천 만원이라면, 30므나는 3억원이 됩니다. 이정도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註): 이 변론 후 형량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360대 140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앞서의 유무죄를 가리는 판결이 280대 220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두 번째의 변론으로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의 죄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30일 목요일

騎虎者勢不得下 오대사, 당신전

호랑이를 탄 사람의 기세는 내려올 수 없다.

일상에 언덕에서

이해인

일상에 언덕에서

한 사람이 민감하게 깨어 있음으로 하여

많은 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이 부주의하거나 깨어 있지 못함으로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 25

[임성삼; 아래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 소크라테스의 진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변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시간이 없었던 탓에 아마 여러분은 고약한 사람들에 의하여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현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을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나를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이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여러분이 바라던 결과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나는 이미 늙어서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여러분 전부에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사형에 처하도록 표결한 사람들에게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또 한 가지 사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패소(敗訴)한 것이 내가 언변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여러분을 설득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말이 나에게 모자라서 패소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패소한 것은 분명히 무언가 모자라서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몰염치(沒廉恥)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또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울며 애원을 하거나 그 밖에 어울리지 않는 짓-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을 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 나는 전부터 위험하다고 하여 비굴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변명의 내용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흔히 하는 방법으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고 살기보다는, 당당한 말을 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판이나 전쟁의 경우에-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지 않으려고 궁리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싸움터에서 죽음만을 면하려 한다면 무기를 버린 후, 추격해 온 적에게 애걸해 생명은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어떤 위험을 당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아무 짓이나 한다면 죽음을 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려운 것은 죽음을 면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오히려 비열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비열한 짓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늙고 발걸음이 더디기 때문에 느린 것, 즉 죽음에 붙들렸습니다만, 나를 고발한 사람들은 영리하고 날쌔어 그 날쌘 것, 즉 사악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 그리하여 나는 사형 선고를 받고, 지금 이 자리를 떠나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진리의 선고에 따라 흉악과 부정의 죄가 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나는 죽음의 선고를 받고 떠납니다. 나도 이 판결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일은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된 것도 괞찮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나에게 유죄를 투표한 분들에게 이번에는 예언을 하렵니다. 나는 지금 사람으로서 예언을 제일 잘 할 시기, 즉 죽음에 임박해 있으니까요. 나는 나에게 사형을 판결한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우스에게 맹세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형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을 테지만, 내 생각으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간섭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그들을 말리고 있었으므로, 여러분은 그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젊기 때문에 그만큼 다루기 힘들며, 여러분은 그만큼 괴로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임성삼; 젊은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예언?]

만일 여러분이 사람을 죽임으로써 여러분이 올바르게 살지 않는다는 비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동으로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며 훌륭한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을 억누르기보다는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훨씬 더 훌륭하고 쉬운 일입니다. 이것이 나를 사형에 처하도록 투표한 여러분에게 드리는 나의 예언입니다.

그러면 이제 헤어지기로 하지요.

[임성삼; 비슷한 경우의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自己)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장 34절)]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 지금 여기서 나에게 죄가 없다고 투표해 주 여러분에게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리들이 사무에 바빠 잠깐 시간이 있는 것 같기에 내가 죽는 곳으로 가게 될 때까지 말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 동안 잠깐 내 곁에 머물러 계십시오. 허락된 시간에 서로 이야기해도 상관 없겠지요? 나는 여러분을 친구로 생각하고, 지금 내 몸에 일어난 일의 뜻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재판관 여러분, 여러분이야말로 재판관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분들입니다. 내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게는 다이몬의 예언이 지금까지 자주 나타났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옳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반대했습니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재앙 중에도 가장 큰 재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 세상에서는 흔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아침 집을 나올 때와 여기 와서 법정에 들어서려고 했을 때에도 반대하지 않았으며, 변론 도중이나 또는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할 경우에도 반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말하는 도중에 나의 입을 곧잘 가로막았으나, 이번 사건에 관한 행동이나 말에 있어서는 나에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까닭이 있겠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임성삼; 철학의 대가가 논리가 아니라, 다이몬이라는 존재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12월 31일 금요일

飛答曰文臣不愛錢武臣不惜死則天下平송사, 악비전

악비가 대답하였다.

"문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관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입니다."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이해인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푸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린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과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 26

* 이번 사건은 나에게 매우 유익한 일 같습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내 몸에 일어난 일이 커다란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한 일이 옳지 않았다면, 신은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자, 죽음이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죽음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죽음은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죽으면 아무 감각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전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혼이 이 세상에서 저승으로 주소를 옮기듯이 옮겨 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 만일 그것이 무로 돌아가서 모든 감각이 없어진다면,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이 든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면 죽음이란 굉장한 소득일 것입니다.

꿈도 구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든 밤을 골라내어 자기 생애의 다른 밤이나 낮과 비교해 살펴본다면, 그런 밤보다 더 즐거운 낮과 밤이 자기 생애에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여느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페르샤의 임금이라 할지라도 그런 밤이 다른 낮과 밤에 비해 손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단 하룻밤보다 길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리고 만일 죽음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저승으로 가는 여행길과 같은 것이라면,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죽은 자는 누구나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노스라든지, 라다만튀스, 아이아코스나 트리프톨레모스라든지, 그리고 그 밖에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정의파였던 반신(半神)들을 볼 수 있다면, 이 여행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만일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오스와 헤시오도스와 호머와 함께 모일 수 있다면, 여러분 가운데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할지라도 서슴지 않고 나서려는 분이 많으리라고 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몇 번을 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 그야말로 좋은 것일 테니까요.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팔라메데스나 델라몬의 아들인 아이아스나 그 밖에 옛 사람으로서 옳지 못한 재판을 받고 죽은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받은 재앙과 그들이 받은 재앙을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 세상 사람들도 두루 살피면서, 그 속에서 누가 지자(智者)이며, 또 누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려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이겠습니까?

재판관 여러분, 트로이아로 대군을 이끌고 간 사람[역주(譯註): 아가멤논]이나 오디세우스나 시쉬포스나 그 밖의 수많은 남녀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저 세상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사귀며 사물을 검토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여하튼 저 세상 일에 대해 이런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여 사형에 처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세상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하겠지만, 만일 전설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죽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재판관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죽음에 대해 좋은 전망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나 죽은 후에나 나쁜 일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신이 보살펴 준다는 것을 진실로 믿고 명심해 두어야 합니다.

[임성삼; 본인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자이지요.]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나에게 일어난 이와 같은 일도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닙니다. 나로서는 죽음으로써 귀찮은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나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계시도 나의 행동을 가로막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리고 나는 유죄로 투표한 사람들이나, 나를 고발한 사람들에게 조금도 화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임성삼; 공자님도 자기를 죽이려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어찌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하늘의 뜻이 아니면 내가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생각하고 나를 유죄로 판결하였거나, 고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해칠 생각으로 한 것이므로, 그들은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는 한 가지 부탁을 하렵니다. 여러분, 내 자식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면 내가 여러분을 괴롭힌 것 같은 일로 그들을 괴롭혀 나의 비난에 복수를 하십시오.

만일 내 아들들이 덕을 쌓기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을 쏟는다면, 그리고 또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는데 잘난 체 뽐낸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한 것같이, 유의할 곳에 유의하지 않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곳에 마음을 쏟으며 우쭐거리는 그들의 잘못을 책망해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이런 일을 해주신다면, 여러분에게 옳은 대접을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사형을 받기 위해,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그러나 우리 앞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신 외에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최현, 범우사, 1998>

- 끝 -